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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사들에게, 먼저 부르심을 확인하라

기사승인 2020.10.28  22: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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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목사는 무엇으로 살까? 목사가 주의 종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목사는 부르심을 좇아 사는 이들이다. 어느 날 주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만나셨다. 그때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고 믿는 이들을 핍박하던 그리스도의 원수였다. 그런데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것은 다시 살 수 있는 기회였다. 주님은 그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갈 2:8)로 부르셨다. 그 부르심은 바울이 살 길이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원수였던 바울은 그 부르심에 목숨을 걸고 살았다. 심지어 그는 그 복음을 위하여 자신에게 스스로 저주를 걸기까지 하였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불신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술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오랜 시간 어머니와 아버지는 별거했다. 필자는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살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홉 살부터 어머니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지만, 매우 모나고 괴팍한 아이가 필자의 모습이었다. 그런 아들이 걱정되었던 어머니께서는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중증 술중독자였던 아버지와 다시 살기 시작했지만,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39살에 급사하셨다. 절망하던 어머니는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셨고 어머니를 좇아 필자도 교회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주님을 영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오랜 시간 만들어진 ‘하정완’이란 존재가 필자를 묶고 있는 운명의 사슬 같은 것으로 지배했다. 그 사슬을 풀고 싶은 방법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필자는 언제나 죄인 된 존재로 스스로를 이길 수 없는 이름뿐인 신학생이었다. 그때부터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하정완’이라는 죄인 된 존재를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몸부림치며 노력했지만 언제나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바울의 로마서 7장 고백이 나의 고백이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8~19).

바울이 싸웠던 갈등과 싸움은 1988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도 여전했다. 내 안은 너무 시끄러웠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싸우고 있었다. 그때부터 의심이 들었다. ‘나 같은 목사를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용납하실까’ 하는 의심이었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던 필자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992년 가을 어느 새벽에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이 필자를 부르신 것이다. “조국의 잃어버린 청년들을 회복하라.” 당시 서른 네살이었다.

그 후 여전히 나 ‘하정완’과 싸우며 걸어왔다. 절망적이었지만 그때마다 집중했던 것은 바로 그 부르심이었다. 모든 관심과 공부와 노력은 ‘청년’에게 초점 되었다. 우선 ‘하정완’이란 청년을 어떻게 온전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 공부하고 수련했고, 그것을 또 다른 청년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삼았다. 그렇게 청년목회자로 살던 필자는 1999년 꿈이있는교회를 청년들과 개척한 후 지금까지 청년목회자로 살고 있다.

분명 필자는 장년목회로 전환할 수도 있고, 더 좋은 환경의 교회로 옮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부르심이 중요했다. 바울처럼 그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스스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라고 부르면서 이방인을 위한 복음 외에 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필자도 청년을 살리는 부르심이 나 자신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걸어왔다.

목사는 세속적 직업이 아니다. 목사는 반드시 자신의 부르심을 알아야 하고 그 부르심을 좇아 살아야 한다. 가난하든 부요하든 그 교회의 크기가 어떻든 아무 관계가 없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주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웃거리며 줄을 서고 서클을 택하지 말고 주의 부르심으로 살아야 한다. 잊지 말라. 젊은 목사들이여! 먼저 부르심을 확인하라.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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