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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밥물과 솥뚜껑에서

기사승인 2020.10.28  22: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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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그동안 수없이 교인들의 개업식에 갔다. 숱한 개업식 설교에서 단 한 번도 곤혹스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가게(기업)는 재화를 얻으려는 목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재화를 추구하며 장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게 뭐 곤혹스러운 일이냐, 목사가 되어서 교인들 돈 많이 벌라고 축복(?)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개 교인이 식당을 시작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하던 장사도 어렵다는 때에 배짱 좋게 시작했다. 그냥 밥집도 아니었다. 고깃집이었다. 그곳에서 설교라고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릴 때 가끔 어머니는 쌀을 솥에 안치고는 부엌 아궁이에 불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전 보았습니다. 밥이 끓을 때 그 무겁고 큰 솥뚜껑을 들썩이며 밀고 올라오려던 무서움을 말입니다. 솥뚜껑은 그 밀고 올라오려는 힘을 제압하려는 듯 들썩들썩 움직이곤 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밥이 되는 그 신비는 내리누르려는 솥뚜껑과 밀어 올리려는 김의 역학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밀고 올라오는 김의 힘이 너무 세서 솥뚜껑을 아예 벗겨 버렸다고 합시다. 반대로 솥뚜껑의 힘이 더 세서 끓는 김의 힘을 아예 봉쇄했다고 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쌀은 영원히 익지 않은 채 설익습니다. 끓어오르는 김이 있어서 밥은 비로소 익지요. 김을 누르는 솥뚜껑이 있기에 밥은 밥이 됩니다. 

밥을 지을 때 일어나는 이 역학의 관계, 즉 끓어오르는 김과 그것을 누르는 솥뚜껑이 지니는 힘의 대립적 관계가 인간의 욕망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갖는 대립각과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열을 받아서 끓어오르는 김은 인간이 지닌 욕망과 같죠. 더 많이 더 크게 갖고(벌고) 싶은 욕심은 마치 밥솥의 끓는 김과 갖지 않습니까? 그러나 십자가의 가르침은 반대로 솥뚜껑처럼 무겁게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이 가치관의 대립성이 우리를 늘 곤혹스럽게 하지 않습니까?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만 할 것 같은 당혹감에 빠진다면 그는 웬만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어느 한쪽을 무시하고 자기 좋은 대로 하지만요. 그런데요. 우리가 밥을 지을 때 단지 두 경우만 있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3의 기술이 있습니다. 그 제3의 기술이 있어서 밥이 가능한 것입니다. 

끓어서 들썩이는 솥뚜껑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할 때면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솥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끓는 열과 솥의 크기에 비례된 어느 간격만큼 살짝 솥뚜껑을 젖힙니다. 너무 열어도 안 된다는 거, 너무 안 열어도 안 된다는 거 모두 아시죠? 그게 바로 제3의 기술입니다. 약간만 힘을 빼주는 슬기와 절제, 욕망과 제어의 에너지를 동시에 조율하므로 생명의 밥이 되게 합니다. 그러니 밥은 끓는 열로 되는 것도, 그것이 손실되지 않게 하는 응축 에너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지요. 제3의 기술이 있어야 대대손손 밥을 지어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겁니다. 대치하고 있는 두 에너지가 조금씩, 그러나 스스로에겐 치명적인 자기부정인, 내어놓음(솥뚜껑과 솥단지와의 간격)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돈을 버는 일이란, 가게나 사업을 벌이는 일이란 마치 밥을 짓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이 어찌 욕망 없이 살 수 있겠어요. 욕망이 인간의 꿈에 추진력을 갖게 하고 진보를 가져오는 게 아닙니까? 사는 맛은 욕망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인간이 욕망으로만 살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말씀의 제어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말씀에 제어를 당해서 수도승처럼 죽은 사람 마냥 살수는 또 없는 거죠. 그때 필요한 게 바로 밥물이 펄펄 끓으면서 들썩대는 솥뚜껑을 빼꼼하게 여는 지혜입니다. 그게 주님이 가르치는 자기부정의 삶 즉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가르침이라는 대립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제3의 길로 살았으면 한다. 신앙과 삶은 끓는 밥물과 솥뚜껑 같은 관계다. 그렇다면 제3의 길을 터득해야 밥도 신앙도 설익지 않을 터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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