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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을 추진합니다

기사승인 2020.10.22  13: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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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모임

   
▲ 비전향 장기수 故 강담 선생.

강담 선생
지난 8월 충남 논산의 한 요양원에서 87세의 노인이 한 많았던 이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이름은 강담. 

그는 함경남도에서 가난한 소작민의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살림에 집 앞에 있는 학교를 해방되어서야 다닐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7세 소년이었던 강담은 인민군에 자원입대했고 이후 8년간 해군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3등 항해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청진수산사업소에서 일하다 당의 부름을 받게 되어 남파됐다. 1965년 동해 공해상으로 내려오다 울릉도 부근 해상에서 구축함에 발각됐다. 기관장이 자폭하기 위해 수류탄의 핀을 뽑았지만 불발되면서 8명의 공작원 전원이 체포됐다. 방청객도 없는 비밀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고문과 구타, 전향 강요 속에 감옥생활을 하다 올림픽이 있던 1988년에야 출소하게 되었다. 24년 만이었으며 그의 나이는 55세였다. 

1989년 14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감시로 가구 공장과 막노동 현장을 옮겨 다녔고 아파트와 성당 경비 등의 일을 해야만 했다. 2005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왼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졌고 2012년 전립선암 판정까지 받았다. 2017년 다시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결국 지난 8월 21일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그를 비전향 장기수라 부른다. 

 

비전향 장기수를 아시나요?
“비전향 장기수는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는 분들이다”(정지윤, 책 ‘바꿀 수 없는’ 중).

비전향 장기수는 국가보안법이나 1980년 폐지된 반공법, 사회안전법(현재는 보안관찰법) 등으로 7년 이상 복역하면서 사상 전향을 하지 않은 장기수를 가리킨다. 

인민군 포로, 빨치산, 남파된 정치공작원들로 평균 30년 정도 감옥 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27년을 살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넬슨 만델라도 여기로 오면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비전향장기수들은 감옥 안에서는 지독한 회유, 전향 공작과 고문, 구타로, 나와서는 빨갱이라는 낙인과 계속되는 감시로 심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송환, 그리고 그 이후
2000년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6.15 선언의 결과로 63명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당시 1차 송환 대상에 분류되었지만 미처 신청하지 못했던 분들, 공안당국의 잔혹한 고문 등으로 강제전향당한 분들, 정전협정 이후 반드시 송환되었어야 할 전쟁포로이면서도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협정에 반하여 오히려 수십 년 감옥을 살았던 전쟁포로 출신 분들이 1차 송환에 함께 하지 못했다.

2001년 2월 6일, 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며 ‘전향무효선언’과 함께 북녘조국과 가족 품으로의 송환을 요구했다. 당시 주무당국인 통일부는 이들의 실체와 요구를 인정해 접수했지만 이른바 자격문제와 상호주의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에는 송환이 미루어지게 되었다.

2차 송환을 요구했던 46명 중 오랜 옥고의 후유증과 고령으로 꿈에 그리던 고향과 가족을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이제 13명만 남아 조국과 가족품으로의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

 

2차 송환을 추진하며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바라는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1차 송환 20주년을 맞이하면서 2차 송환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사항이면서 판문점선언에서의 ‘인도주의 문제 해결’ 합의다. 또한 헌법과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협약이 규정한 ‘거주이전의 자유’,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 등 인간의 기본인권 보장문제다. 

최근 이인영 통일부장관이 말한 ‘죽기 전에 만나는 것’ 발언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 또한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관계를 말하며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볼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제 남은 분들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2차 송환을 미뤄서는 안 된다. 죽기 전에 꿈에도 그리던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남북 당국은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의 마지막 소원
고난 일꾼들은 누구나 강담 선생님을 좋아했다. 멋쟁이었고 시원한 성격에 약주라도 한잔 하면 일꾼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고향에 있을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이 어두워지곤 했다.

강담 선생이 남파되던 1965년, 그의 아내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2018년 한 매체에서 그가 인터뷰 한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대로 눈 감고 죽을 순 없어. 부모님 산소에 술도 올리고 싶고, 가족들도 만나고 싶고, 싸움 한 번 안해 본 북의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는 막내도 보고 싶고….”

‘고난함께’는 남은 열세 분의 송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겠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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