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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감리회를 ‘콩테’(comte)의 품격으로

기사승인 2020.10.15  17: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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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추석 아침인데도 조용하다. 코로나19 감염 염려 때문에 고향 방문을 행정적으로 억제한 탓이다. 늘 그 시간이 그 시간인데 곱절은 무료해진 것 같은 한낮, 모처럼 인터넷 뉴스에서 기사를 읽었다. 젊은 후배 목사의 축도가 빚어낸 ‘교리 재판’이었다. 퀴어(동성애) 집회에서 축도를 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그런데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해석의 충돌’이거나 ‘진리의 충돌’로 보인다. 사건을 표면화할 때는 ‘진리의 충돌’인 것처럼 보이다가 논증하는 과정으로 넘어가면 ‘해석의 충돌’이 되는 게 오늘날 기독교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다. 이 땅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의견 간 갈등은 ‘진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다.

해석은 부차적이고 보조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기독교 신학 중 근본주의적 문자주의에 의하면 성서는 문자 그대로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단순한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여성은 교회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성서에 쓰여 있으면 단순하게 그것이 진리다. 당연히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하는 것은 진리를 거스리는 일이 된다. 그러나 그 주장은 대다수 기독교인을 포함한 보통 사람들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석을 통해야 하는데, 해석을 통하지 않고 이해되거나 전달되는 진리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진리가 언어의 형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진리를 담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편리한 그릇이다. 인간의 다양한 의식과 경험 및 신의 계시에 관한 진리는 언어를 초월하는 게 많지만 그것이 언어의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도, 후대에 전해질 수도 없다. 

그러나 언어는 진리를 전달하고 보존하기 위한 편의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진리를 언어의 그릇에 담을 때나 나중에 그릇에서 꺼낼 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압축할 때 사용하는 코덱의 원리와 같다. 대용량의 동영상 정보는 압축하는 코딩(coding)과 나중에 그것을 재생하기 위해 다시 압축을 푸는 디코딩(decoding)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코딩하기 위해서는 코딩할 때 사용했던 원리를 그대로 역방향으로 적용해야 한다. 이를 풀어 말하자면, 추석에 먹던 떡이 남아서 냉동하고 그것을 해동하는 것과 같은 절차다. 코덱이 일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일련의 규칙과 다양한 코덱이 존재하는 것처럼, 언어도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약속한 규칙의 체계다. 때문에, 언어는 시대와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어떠한 인간의 언어도 진리를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축도를 했다고 고소당한 그 재판은 ‘어느 쪽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 논하기에 앞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진리는 문자주의가 말하듯이 성서의 어떤 구절을 단순히 인용함으로 주장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완전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그 진리를 파악하는 인간의 수준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간의 진리는 부분적이고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한 판단도 오류투성이라는 걸 유럽 중세교회를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구도 자신이 아는, 해석하는 진리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진리는 하늘에 맡겨두고 우리는 최선의 진리를 찾는 게 맞다. 

어쩌다 보니 오늘날 감리회는 이완용이가 쓰기 시작했다는 ‘꼰대’가 되었다. ‘해석’하는 일을 뒤로하고 ‘주장’하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이는 코딩하는 기술만 있지 디코딩하는 능력의 부족해서다. 그 교리 재판에서 피고 측 변호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감리교회가 넓어질지 좁아질지 혹은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 아니면 더 ‘꼰대’가 될지의 경계가 된다.   

이번 젊은 목사의 축도로 야기된 교리 재판을 ‘재판’ 하지 말고 부디 디코딩해야 한다. 그래서 ‘꼰대’가 된 감리회를 ‘콩테(comte)-伯爵’의 품격을 부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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