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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교회

기사승인 2020.09.28  11: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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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철회 목사, 뉴욕 청암교회

   
▲ 차철회 목사, 뉴욕 청암교회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1970년대 기생관광 사업이 외화획득사업이고 애국하는 것이라며 장려하던 시절, 기생관광을 온 일본인들과 하굣길 여고생들이 섞이게 되자 가이드가 일본어로 소리를 질렀다. “소매치기에 주의하세요, 가방을 가슴에 꼭 안으세요.” 그 순간 박완서 작가는 일본어를 알아들은 것이 너무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니 수많은 학교, 셀 수도 없는 학원 간판이 있었지만, 그 어느 곳도 부끄러움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많은 학교와 학원 간판들 앞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휘날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 수필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필자의 신학교 재학 시절, 사복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기 때문이다. 기생관광의 중단을 요구하는 유인물 한 장이 가방 안에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주장의 유인물임에도 마포경찰서로 연행되어 유인물을 만든 배후를 말하라며 죽을 만큼 맞고 “본인은 철저하게 불온한 유인물 소지를 반성하며, 앞으로 다시는 불온서적이나 유인물을 소지하지 않을 것이며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는 자를 즉시 신고하겠다”라는 반성문과 서약서를 쓰고 석방됐다. 반성 없는 반성문을 작성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좌파 학생으로 낙인찍혔다. 당연한 유인물 한 장에 무조건 잡아다가 때리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형사의 인간성, 폭력으로 다스려지는 조국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던 시절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수필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교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교회”라는 현수막을 걸고 싶었다. 이즈음 다시 그 현수막이 절실하다. 한국교회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바리새인이나 타락한 제사장들이 외쳤던 “고르반”만 외치고 있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세가 되어야 할 텐데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랑하고 순교를 각오하는 믿음으로 떳떳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을 주님께서는 아예 구원의 가망이 없는 사람들로 포기하셨다. 의롭기만 했지 부끄러움을 몰랐기에 스스로 정의롭다고 여기고, 늘 정의롭기에 다른 사람은 다 사탄이며 죄인이다. 

많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실제 자본주의와 물질주의 바알신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다. 그래서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하나님 은혜로 자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부분 예배와 강단에서 ‘우파의 씨를 말리려는 좌파 정권의 코로나19 정치 방역’을 비난하고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 만들려는 좌파 정권을 하루속히 끌어내려 달라’는 기도와 메시지가 울려 퍼지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80%를 차지하는 비기독교인의 생각과 판단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60대 이하 세대의 고민과 가치관을 두고 제대로 반응한 적 있는가. 언제까지 기독교라는 게토(Ghetto)의 울타리에 갇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교회라는 조직과 자리를 지키려는 욕망에 순교 신앙을 이용하는가. 본회퍼는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기독교를 위해 히틀러에 저항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며 잠에 빠지는 실수를 한다. 그런데 잘못은 노아가 했는데 심판은 그 사실을 지적한 함이 받았다. 실수는 노아가 했는데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들들의 몫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원래 그런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 좀 위로가 될까.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며 죄를 짓는 자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이, 의식이 있는 사람이, 양심이 있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대신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죄악을 우리가 지었지만 부끄러움은 예수님이 감당하셨다. 역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십자가를 지고 우리 대신 부끄러움을 당하셨다. 감리회 혹은 기독교 안에 살아있는 자로서 그래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자리에 서고 싶다. 나 자신 때문에, 우리 연회 때문에, 우리 감리교회 때문에 차마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르지만, 그 부끄러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몫이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그래도 내게 남겨진 은혜라고 생각하며 애써 위안으로 삼는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회개할 수 있고, 회개해야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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