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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기사승인 2020.09.18  12: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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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코로나19 상황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고독하라’는 요청이어서 그렇다. 소위 사회적 동물에게 혼자 존재하라고 방구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동안 살던 삶의 시스템을 멈추고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아우성대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교회도 난리가 났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답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를 시작하자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우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자 금단증상 같은 불안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바쁘게 달려온 삶은 힘들지만 괜찮았던 것이다. 마치 시지프스 신화처럼 매일 큰 바위를 산 꼭대기로 올리고 또 올리는 반복의 삶이지만 그 삶에 익숙했던 것이다. 부조리한 삶이지만 반복된 삶, 그러나 행동하는 것이 위로였고 바쁘고 피곤한 것이 괜찮은 것이었다. 그런데 멈춰야 하고 거리를 두자 그동안 지탱해왔던 것들의 진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부조리한 삶을 살면서도 그 부조리한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택하여 살았다. 카뮈는 벗어날 수 없는 이 부조리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두 가지, 정신적인 자살을 포함한 자살을 택하거나 종교나 형이상학을 택함으로 회피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 중 우리는 종교인으로 살았던 것을 보게 되었다. 소위 절대적 존재를 만들고 기대어 사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원론을 강력하게 차용해 세상이 부조리할수록 저 세상을 강조함으로 소망을 갖고 살았다. 또한 현세적 삶의 부요와 번영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루게 되는 천년왕국사상을 물질적으로 교리화한 것에 길들여진채 믿어왔다. 종교는 위로의 수단이 된 것이다.

카뮈보다 한 세대 앞에 존재했던 니체는 ‘신은 죽었다’는 말로 종교적 행위를 무시했다. 즉 유약한 인간의 선택으로 종교를 거부한 것이다. 플라톤주의 관점에서 저 세상을 추구함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도피로 선택한 자기 합리화 혹은 자기 정당화로, 니체는 직시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오늘 우리 시대의 신앙은 이같은 현실도피적 혹은 이 세상에서의 번영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이 그 모든 허상을 깨버린 것이다. 신천지 같은 이단이 깨졌지만 동시에 교회 안에 이단적 사고, 현실 도피적 신앙이나 물질적이고 현세적 축복과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교회들, 절대로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던 그들도 드러났고 깨졌다. 소위 정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논쟁과 세상적인 권력 투쟁과 비본질적인 것에 목사들과 장로들이 목숨을 걸었던 것도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드러났다. 아직도 상당수 지도자들이 무지하지만 말이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알아챈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은 죽었다.” 베드로의 말을 빌리자면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벧후 2:2),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때문에 훼손되고 더렵혀진 것이다.

분명 시지프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항적 인간처럼 부조리한 종교와 삶을 반항하는 인간의 태도는 의미가 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종교의 하나님 곧 자판기 하나님(deus ex machina)를 거부하는 것도 당연한 태도다.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화려한 성전을 지어도 소용이 없다.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분명히 주님이 말씀하신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고 근사하게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였지만 주님이 그들을 모른다고 하셨다. 아프지만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분명히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위기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주의 일을 하고 있는데 주님은 불법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맛을 내는 것 같은데 우리가 맛을 잃었다고 말하며 세상이 우리를 짓밟고 있다면 정말 그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진실이라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그 날이 우리 눈 앞에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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