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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기사승인 2020.07.02  16:3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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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64년 네로의 핍박, 165년 안토니우스 역병과 249년 역병까지 기독교는 치명적인 위기 앞에 있었다. 두 번째 역병 때는 로마에서만 하루에 5천 명이 죽었고 알렉산드리아 인구 2/3가 사망할 정도로 강력했다. 특히 두 차례의 전염병을 거치면서 로마제국의 이방 종교는 희생양으로 기독교를 공격했다. 그런데 오히려 313년 기독교는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로마 제국의 인구가 6천만 명인데 무려 500~750만 명 정도가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이다.

집단 개종이었다. 이 이상한 교회 부흥의 이유 중 하나로 로드니 스타크는 그의 책 ‘기독교의 발흥’에서 역병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그 고통스러운 박해의 시대에 발생한 역병 앞에 교회는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모습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미 초대교회는 영적 부흥 상태였고 충분히 이 엄청난 환란과 역병을 이길 힘이 있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 이후 벌어진 회개운동 때문이었다. 회개를 통한 영적 부흥을 이룬 교회는 역병이든, 박해든 다른 가치를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유였다.

1347년 시작된 흑사병으로 15세기까지 1억 명이 죽는 엄청난 재앙이 몰아닥쳤다. 그때 로마 가톨릭교회가 내놓은 해답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그 원인을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 다른 대상 곧 이교도와 유대인들에게서 찾아 전가했다. 

그러나 흑사병의 원인은 십자군 전쟁과 같은 것에서 보였듯이 교회의 교만에 있었다. 더욱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자만과 부패 그리고 세속화된 사제와 교회도 그 문제의 중심이었다. 1307년부터 1377년까지 벌어진 아비뇽 유수로 인해 교황의 권위는 무너지고 3명의 교황이 존재하는 등 부패는 극에 달해 있었다. 흑사병은 15세기에도 계속되었지만 교회는 회개하지 않았다. 드디어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파는 일까지 터지는데 부패의 정점이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걸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때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정문에 붙인 95개조 반박문의 제1조는 회개였다. 회복이 시작된 계기였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1903년 원산에서 감리회 여선교사들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촉발된 회개운동은 하디 선교사가 주도했다. 회개운동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을 맞이한다. 계속된 회개운동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다. 역시 회개운동이었다. 그리고 1910년 한일합병을 만난다. 회개로 인한 영적 부흥은 교회가 그 환난을 이길 힘이 되었다. 분명 회개해야 할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였고 을사오적과 같은 부패한 권력자들이었지만 정작 그 중심에는 조선의 교회와 민중들의 회개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 민족은 희망이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신뢰함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남포 엡웟 청년회 총무로 을사늑약 반대에 참여하였던 김구 선생을 비롯해서 서재필과 안창호, 이준, 신채호, 안중근, 주시경, 남궁억, 전덕기, 이동휘, 이승훈, 이상재, 이승훈, 윤동주, 유관순, 김규식, 이승만, 이상설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회개로 인한 영적 부흥이 한국을 살린 것이다.

오늘 우리가 만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상의 위기와 더불어 생긴 교회의 위기 앞에 교회가 할 일은 분명하다. 회개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부패와 탐욕이 가득하고 정의와 진실이 드러나지 않으며 온통 물질과 권력에 사로잡힌 교회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된다. 촛대를 옮기시고 한국교회와 감리회의 소멸로 이끄실지도 모른다는 걱정이다. 그러므로 양심에 화인을 맞은 것 같은 세대 앞에 무너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선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회개를 요청한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지라도 겸비하며 회개로 나섰던 다니엘이나 예레미야처럼 이 심각함을 아는 이들의 회개를 요청한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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