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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본받으라

기사승인 2020.05.30  20: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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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수 목사, 솔트레익교회

   
▲ 박승수 목사, 솔트레익교회

이번 가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표인 감독회장과 각 연회 감독 선거가 있다. 벌써부터 여러 사람들이 자신이 감리회를 이끌 적임자임을 내세우면서 권력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원래 교회의 자리는 섬기기 위한 자리다. 지배하기 위한 벼슬이 아니다. 평신도보다 집사가 더 많이 섬겨야 하고, 집사보다 장로나 목사가 더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 감독이나 감독회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낮은 곳에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하는 지도자들 대부분이 섬겨야 할 대상 위에서 그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자리에 대한 욕심이 갈등을 일으키고, 그 갈등으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교회도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로써 갈등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물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으로 인한 갈등과 분쟁과는 다른 갈등이다. 지도자가 되기 위한 갈등과 분쟁은 교회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욕심에 기인한다.

교회 지도자 개인의 욕심에 기인한 갈등이나 분쟁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윤리적인 타락은 더욱 큰 문제다. 사회의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목회자의 윤리적인 문제를 보도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다. 우리 감리회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한 사람의 일탈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어느 한 사람이 바로 교회의 지도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지도자 한 사람의 윤리 도덕적인 일탈이 교회 전체를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게 한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성공지상주의라는 세속의 논리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처럼 문제를 일으킨 교회의 지도자도 메가 처치(Mega Church)를 담임하면 별일이 아닌 듯이 넘어간다. 

잘못에 대한 분명한 지적과 징계가 없으면 조직이 문란해진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아무리 큰 교회를 담임하거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을 때, 조직의 체계와 질서는 바로 서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오늘날 감리회는 그렇게 하지 못해 왔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거나 ‘은혜’라는 명분으로 문제를 덮어왔다. 그 결과 작금의 상황에 이르러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선교의 문은 닫혔다.

교회 지도자의 윤리적인 일탈은 교회의 선교의 문을 막아버린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완전을 향해서 최선의 경주를 기울여야 한다. 

사도바울은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장 16절)고 했다. 적어도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사도바울과 같이 자신 있게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지도자로 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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