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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물음

기사승인 2020.05.11  20: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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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도 감독, 광림교회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2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3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4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5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6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7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8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9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10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11 창세기 3장 1~11절

 

김선도 감독, 광림교회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이야기하기를 창세기는 우리의 신앙과 교리의 근본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잘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많은 이단이 창세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우리가 창세기에 대한 바른 지식과 신앙이 없을 때, 이단에 현혹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믿음으로 고백할 때 우리 안에 큰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고 우리는 그 질문에 대답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때 기도로 응답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관계성을 맺어가는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선재적인 은총과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드시고 그것을 따먹지 말라고 하셨냐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손발을 꽁꽁 묶어놨다면 죄도 짓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의 은총을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선재적 은총입니다. 자유 의지를 주셔서 따먹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뜻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 질문하고 답하는 대화의 관계를 맺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분이시지만 일방적인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입장을 이해하기 원하시고 인간과 소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세 시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질문하시는 인류 최초의 물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 응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첫째 질문은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창세기 3장 9절에는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은 아담을 부르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아담을 찾으시는데 아담은 도망을 다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물으시며 찾으십니다. 마침내 아담이 대답하길 “하나님 제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아담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죄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 그들은 벗은 그대로,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니 자신들을 가릴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오지 못하고 숨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다닙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우리를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설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도덕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Emil Brunner)는 ‘우리들의 신앙’(Our Faith)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본문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숲 속에서 한 아들이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방황하며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아들아 어디 있느냐?”라고 소리칩니다. 그때 아들이 대답하기를 “아버지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있는 곳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담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라고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대답을 원하십니다. 에밀 브루너는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은 척하고 전혀 엉뚱한 변명을 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죄는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명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때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두 번째 질문은 창세기 4장 8~9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우를 살해한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 사이에 태어난 형제입니다. 가인이 맏아들이고 그의 동생이 아벨입니다. 이 두 아들이 가을이 되자 한 해 동안 감사의 의미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인의 안색이 변합니다. 왜 그런가 하니,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시는 것 같은데,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 안색이 변하고 자신의 동생을 들로 데리고 나가 죽입니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향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가인은 거짓말을 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자신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인의 후손처럼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형제끼리 반목하고 가정에서 불화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현대인은 경쟁심을 갖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며,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하나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가장 가까운 이웃인 형제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누가 우리의 형제인지 인식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가난과 아픔을 나의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물음 앞에서 거짓이 아니라, 진정한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질문에 응답하기를 바랍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마지막 질문은 창세기 16장 8절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약속의 자손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삭 전에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자녀를 얻게 됩니다. 사라가 아직 아들을 얻지 못했을 때, 얼마나 하갈이 밉고 얄미웠겠습니까? 그래서 하갈을 광야로 내쫓습니다. 하갈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하나님의 사자가 묻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를 묻는 것이며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성에 관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하갈과 같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존재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존 맥스웰(John C. Maxwell)은 자신의 가치관과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헤매게 된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인생답게 살기 위해서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항상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이 세 가지 질문은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질문들의 해답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잃어버린 나를 찾고, 내 이웃을 찾고, 삶의 이유와 목적과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인생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얻는 복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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