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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다와 기독교

기사승인 2020.05.05  21: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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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철회 목사(미주자치연회 청암교회)

   
▲ 차철회 목사

세계 2차대전, 태평양전쟁이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난다. 그런데 필리핀의 한 섬에 낙오된 ‘오노다’ 소위는 항복 소식을 듣지 못했고 나중에 전단이나 주민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그러나 오노다는 “현 위치를 사수하라”라는 상관의 마지막 명령과 ‘대일본제국과 천황 폐하가 항복할리 없다’라는 신념 그리고 일본의 항복 소식은 분명 미군의 술수와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74년까지, 전쟁이 끝나고 30년 동안이나 정글에 숨어 살면서 애먼 필리핀 경찰과 농민을 30명이나 암살하는 전과(?)를 올린다.

내가 좋아하는 부활에 대한 정의는 “부활은 죽음의 죽음”이란 표현이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영원히 죽었다는 것이다. 부활로 인하여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 되었다. 유행어로 표현한다면 “쓰기는 죽음이라고 쓰고 읽기는 영생이라 읽는다”이다. 죽음은 이제 영생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마음 놓고 낮아지고, 섬기고, 희생하고 용서할 수 있다. 곧 부활로 승리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0장, 빈 무덤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은 얼른 자리를 피했고,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남아 통곡하며 예수님의 시체를 찾는다. 심지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에게 “우리 주님의 시체가 어디 있는지 제발 알려 주시오. 시신을 무덤에 도로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라고 애원한다. 마리아의 간절한 사랑은 충분히 읽힌다. 이제는 예수님 시신을 붙잡고 추억과 사랑을 회상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예수님이란 무덤 안에 계속 시신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녀의 애절한 소원대로 예수님 시신이 무덤 안에 있었다면, 우리 기독교와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의 삶의 자리로 찾아오셨지만, 우리도 자꾸만 예수님 시신을 무덤에 가두느라 애쓰고 있다. 사람은 죽으면 그만이라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무덤에서 나온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미국에서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고 언제 교회 예배가 회복될지 아직은 요원하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분명 교회도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다. “썰물이 시작되면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Warren E. Buffett)”라는 말처럼 코로나19는 교회와 교인의 그동안 믿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다. 이번 부활절에는 교인 없이 예배를 드리면서 한편으론 기쁘고 감사했다. 그동안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부활절 예배할 때만 부활하신 것 같았는데 이번 부활절에는 예수님께서 교회에서 나와 교인들의 가정과 삶의 자리로 찾아가셨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코로나19가 정리가 되어가고 4.15 총선이 끝났다. 한국은 우리도 모르는 새 달라져 있었다. 신문에 가장 많이 나오던 단어 “헬조선”과 “언제쯤 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의 선진국을 따라갈 수 있을까”라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에게 우리의 품격과 삶이 선진국이 부러워하는 정도로 높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교회다. 솔직히 우리 목회자와 교인 너무도 타락했다고 생각한다. 교인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의 삶과 가치관을 과연 십자가와 부활과 영생의 신앙이 지배하고 있을까? 많은 교인과 목회자들이 밤낮 카카오톡으로 전달되는 극우 인터넷 영상들에 사로잡혀 있음을 본다. 보수적인 이민교회는 더더욱 그렇다. 이들은 워낙 신념이 강해서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잘해도 다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술책으로 본다. 참으로 이상한 애들(빨갱이 좌파 세력)이 정권을 잡아 김정은에게 나라를 바치려고 하는데도 어리석은 국민이 그것도 모르고 국회 의석을 180석이나 주어 무지한(?) 국민이 원망스럽다는 것이다. 만약에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북자인 지성호 씨나 태영호 씨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면 극우 인사들은 “드디어 빨갱이 대통령이 김정은의 지령을 받아서 나라를 북한에 바치려는 증거”라면서 광화문에 드러누웠을 것이다. 입장에 따라 옳고 그림이 얼마나 달라지는가?

구한말 단발령이 내렸다. 물론 일제에 의해 시행된 정책이고 이를 반대하는 일이 “독립운동”이나 의병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투를 움켜쥐고 “상투를 자르려면 내 목을 쳐라”라는 열성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가? 미래세대 젊은이들에게 수구적 우파 그리고 맹목적 근본주의 해결하지 않으면 기독교는 결국 “상투를 붙잡고 차라리 내 목을 치라”는 외침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이미 AI, 4차원의 세계가 도래했다. "우리의 운명은 연결돼 있다"라는 말처럼 코로나19 대유행은 이제 누군가의 문제는 전 세계인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에 대한 재고와 더 나은 비전을 발견하려는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다. 재택근무 등의 편리함은 교회 중심의 신앙과 예배에도 분명히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극우의 프레임에 갇혀서 혹은 근본주의와 자본주의 신앙의 우물에 갇혀서 여전히 우리 기독교가 이 땅의 주류세력이라는 오만과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인구는 나날이 쇠락하여 한국에 많아야 20% 혹은 15% 이하의 소수 세력이 되었다.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우리 기독교가 마음만 먹으면 좌파 빨갱이들을 물리치고 정권을 뒤엎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을 보았다. 기독교가 과연 세상에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사실 80%의 비기독교인은 이제 기독교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사회 발전과 통합에 방해되는 존재라고 여기기도 한다. 교회 안에 남아 있는 많은 교인이 때로는 하나님 말씀보다 극우 유튜버에 자신의 소망과 가치관 그리고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감리교회는 “성경 전통 체험 이성 토착화”의 신학에 기반한다. 역사와 시대의 변화를 읽은 이성적 신앙도 중요한 기둥이라는 뜻이다. 분명히 주류에서 밀려났는데도 아직도 주인공인 줄 알고 변화의 흐름을 전혀 못 읽는 모습이다. 변화된 시대에는 무감각하고 젊은이들과의 공감 능력이 제로(Zero)인 꼰대 정당으로 비치는 우익 정당처럼 우리 기독교도 '꼰대 기독교' 혹은 사회와 동떨어진 자기들끼리의 ‘밀의 종교’처럼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한 정치 전문가는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의 괴멸은 “세상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고, 감수성이 없으니 공감·소통 능력도 없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말만 거리에서 피를 토하듯 외쳤고 국민은 전혀 듣지 않았고 오히려 혐오감만 준 것”이라고 짚었다. 여기 통합당이란 단어 자리에 기독교를 넣으면 어떨까?

“2020년 총선 결과는 한국 보수가 지역·세대·이념·계층의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정치적 자폐증’을 앓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지난 2년간 이 지면을 통해 한국의 보수가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없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상태’인 정치적 자폐를 벗어나지 못하면 ‘보수의 몰락’과 ‘주류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으나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보며 절망했다(2020년 5월 1일 경향신문 ‘박성민의 정치인사이드’ 인용)” 이 폐부를 찌르는 분석과 경고가 나에게는 우리 기독교를 향한 외침으로 들렸다.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가고 부활의 소망 위에 살기보다는 모든 것을 좌파 대통령 탓으로 비난하고 모든 것에 빨갱이로 연관시키는 것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선거의 패배는 좌파에게 속은 무지한 국민의 인식과 부정선거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그나마 다시 일어설 희망은 없을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십자가 희생과 부활의 승리와 영생의 소망을 신앙과 삶의 가치관으로 정말로 믿고 또 전파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소위 땅 한 번 파 본 적이 없는 목회자들이 자본주의적 가치로 돈과 명품과 고급 자동차를 신앙과 축복의 척도로 여긴다면, 우리는 언제 희생과 섬김의 도를 실현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인가?

이대로 가다가, 좌파 대통령이 물러나고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기독교는 부흥 시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애플과 삼성을 누르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다시 지배할 가능성만큼이나 불가능할 것이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을 담던 최고의 코닥 필름(Kodak Film)은 디지털 시대에서 이제는 영원히 도태되었다.

십자가 희생과 부활의 소망으로 가치관을 바꾸고 세상을 향한 봉사와 섬김의 태도로 바꾸지 않는다면 기독교의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기독교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끝났다. 세상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더는 세상을 교회가 가르치고 이끄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세상은 교회보다 똑똑해졌고, 세상이 진정한 교회 모습을 판단하는 시대이다. 여전히 교회라는 게토(Ghetto) 안에 갇혀 변화되지 않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구원할 수 있다는 사고를 벗어야 한다. 이제는 진심으로 세상을 섬기고 희생하고 소통하며 공감하는 시대를 열어야 그나마 마지막 희망이 있을 것이다. “어머나, 아직도 교회를 안 나가세요?”라는 전도 문구가 생각난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 뒤에서 외칠 것이다. “아직도 교회를 다니세요?”라고 말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쩌자는 것인가? 물론 나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교회를 어떻게 해체하고 변화시키시더라도 순종하려고 한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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