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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빈자리, 예수님의 사랑으로

기사승인 2020.04.01  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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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 있는 선교’로 미얀마 복음의 꽃봉오리 움트다
밍글라바! 미얀마 ③ 고아들의 집, 고아들의 부모 <끝>

따웅지 학사는 냥쉐에서 방문했던 학사와 다르게 열악했다. 미얀마에서 네 번째로 대도시인 따웅지인 만큼 빈부격차도 심한 듯했다. 사진은 모든 선교 활동을 마친 후 삼송교회 단기선교팀과 따웅지 학사의 아이들.

미얀마 샨주 냥쉐에서의 단기선교가 무르익어갈즈음 2월 6일 마지막으로 선교팀이 방문한 곳은 해발 1430m 고원에 자리하고 있는 따웅지였다. 미얀마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답게 인레호수가 자리하고 있는 냥쉐의 고요함과 달리 따웅지에는 많은 사람들과 자동차로 북적였다.

인레호수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따웅지는 강원도 미시령옛길을 떠오르게 할만큼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었다. 양곤만큼은 아니었지만, 따웅지에 비하면 냥쉐는 인레호수로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고 있음에도 한적한 시골이었다.

따웅지에는 교회도 많았다. 신학교는 물론 교단 본부까지도 위치해 있었다. 그만큼 열린 도시였다. 하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따웅지 또한 아픔의 역사를 갖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들이 가득했다.

따웅지가 발달하게 된 건 영국 식민지배를 받던 1894년, 영국의 행정 관서가 지리적인 이유로 인레호수 인근에서 높은 고산지대로 옮겨간 까닭이다. 현재는 샨 고원의 토착 민족을 비롯 인도계 미얀마인, 중국계 미얀마인이 지배적이다. 그 중에서도 빤데(Panthay)라고 불리는 미얀마 거주 중국계 무슬림 후손이 많다.

다양한 인종 때문에 따웅지에는 불교 사원을 비롯해 교회, 모스크, 힌두 사원 등 다양한 건축물이 공존하고 있었다. 또한 양곤에서나 볼 수 있었던 현대식 쇼핑센터도 해발 1430m 고원에 있었다.

따웅지 자체가 관공서, 은행, 쇼핑센터, 대규모 전통시장 등이 모두 밀집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필요에 따라 드나드는 만큼 선교팀은 따웅지에서 만날 교회와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달랐다. 더욱이 지난 이틀 간 만난 미얀마 아이들과의 교제로 선교활동에 자신감도 붙어 있었다.

 

학교를 마친 후 학사로 돌아오고 있는 아이들.

오후 2시즘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찾아간 교회였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20명 의 아이들이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한 집에 살고 있는 교회였다. 한창욱 선교사는 냥쉐의 학사(② 두 얼굴의 미얀마 학교 편 소개)처럼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학교를 보내는 따웅지의 학사라고 소개했다.

학사는 미얀마 대도시 따웅지에 위치한 것과 다르게 매우 열악했다. 따웅시 중심을 벗어나 비포장도로로 30분을 더 들어간 후 흙길을 따라 5분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있던 학사는 2월의 추운 바람에 흙먼지가 수시로 일어났고, 아이들의 잠자리는 비닐 한 장 쳐있을 뿐이었다.

비닐 벽도 한창욱, 김미혜 선교사가 가기 전까지 찬 바람이 수시로 들어오는 대나무로 엮은 나무벽이었다. 많이 열악한 학사였지만 그곳에서 20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자라나고 있었다.

남자아이들 10명 정도 함께 생활하는 따웅지 학사의 숙소.

따웅지에서 만난 아이들은 냥쉐에서 만났던 불교 학교의 아이들, 야마웅 목사의 학사 아이들과 달랐다. 매우 수동적이었고, 모든 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들 특유의 웃음보다 쑥쓰러움이 많았다. 아이들끼리도 장난도, 대화가 많지 않았다.

특히 삼송교회 박예은 청년이 미술활동 중에 콧물이 그렁그렁한 어린 아이에게 다가가 콧물을 닦아주자 그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한상일 청년은 “사소한 행동에도 아이들이 미안해하는 소심함과 눈치를 보는 게 이상했다. 아이들에게 편하게 대해주고 많이 웃어주자 아이들은 그제야 함께 웃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역 후에서야 선교팀들은 따웅지에서 만난 아이들이 모두 고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미혜 선교사는 “다섯 종족이 함께 사는 따웅지 학사는 한부모 가정, 고아, 자신이 어느 종족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학사에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매일 3끼 식사를 하고, 학교를 가고, 거주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페이스 페인팅 활동 중 학사에 있던 오토바이 사이드미러로 얼굴을 비춰주자 어린이들이 수줍게 웃고 있다.

미얀마어를 못 하는 아이들, 자신이 어느 종족의 후예인지도 모르면서 그 종족의 말만 하는 아이도 있었다. 따웅지 학사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먹으며 자라는 곳이었다. 

따웅지 학사는 먹을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소통도 불가능한 아이들을 그저 사랑으로 책임지고 돌보는 스티븐 목사(34) 부부가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좋은 친구, 선생이 되어주는 한국의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따웅지 학사는 운영될 수 있었다.

한창욱 선교사는 “자신의 콧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그 아이에게 처음 본 사람이 콧물을 닦아준 일은 처음 받은 관심과 사랑이었기 때문에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부모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과 관심을 줄 때 가장 큰 선교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신앙생활하는데 너무 다른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찾아갔던 미얀마였다. 한국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선교팀원에게 각자 주신 달란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미얀마의 눈동자들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하셨다. 언제 어떤 환경의 선교현장을 가더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함으로써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특별했던 선교현장,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따웅지 방문을 마친 후 한창욱 선교사의 트럭에 앉아 숙소로 돌아가는 삼송교회 단기선교팀

미얀마 따웅지=김목화 기자 yesmoka@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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