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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자기개혁

기사승인 2020.03.12  01: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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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원 목사(한빛교회)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19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20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21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22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23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24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25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26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27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28

사사기 20장 19~28절

 

김태원 목사(한빛교회)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재의 수요일이란 구약성서에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재를 뒤집어쓰고 옷을 찢으며 회개하는 것으로부터 유래됐습니다. 따라서 사순절의 시작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된 회개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자기를 올바른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 신종 전염병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 가운데 두려움과 공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확산 속도가 빨라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것이 바로 인재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지 못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본문 사사기 19장부터 21장까지에 나와 있는 긴 사건은 오늘날 우리 신문 사회면 톱기사에 날 만한 이야기입니다. 사사 시대에 레위인 제사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자기의 정식 부인 말고 첩을 하나 얻어 가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 21:13~15에 의하면 레위인 제사장의 결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지니 과부나 이혼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에게 이와 같은 순결한 결혼을 요구하는 것은 제사장의 성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공공연히 남이 보란 듯이 첩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의 종교계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그 첩이 또 레위인 이외의 다른 남자와 부정한 일을 자주 하므로 이들은 부부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첩은 부부 싸움을 하고 자기 친정에 가서 넉 달을 지냅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레위인이라면 회개하고 여인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술 더 떠서 베들레헴으로 그 첩을 데리러 갑니다. 그런데 장인은 사위보다 한술 더 뜹니다. 장인은 레위인은 레위인다운 삶을 살라고 꾸짖지 않고 그를 환영하며 사흘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가려고 하니 이틀이나 붙잡혀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그 첩과 함께 레위인은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떠나서 길을 가다가 기브아에 이르게 됩니다. 기브아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베냐민 지파가 살던 곳인데 그 레위 제사장을 하룻밤 자도록 영접해 주는 집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사정을 딱 하게 여긴 한 노인이 레위인과 첩을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막 잠을 청하려 하는데 그 마을 불량배들이 와서 그 노인에게 그 레위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불량배들은 레위인의 첩을 밤새도록 집단 성폭행하고 그 여인을 죽여서 그 문밖에 버려두고 갔습니다. 레위인 제사장이 다음 날 아침 문을 열고 가는데 그 여인이 문 앞에 죽어 있는 것을 봅니다. 양심 있는 제사장 같으면 회개하고 나 때문에 이렇게 된 일이니 그 여인을 장사지내고 끝낼 텐데 한술 더 떠서 그 여인의 시체를 12개 마디로 쪼개서 이스라엘 12개 지파에 보냅니다. 그것을 본 이스라엘 12개 지파는 공포에 휩싸이며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사사기 19:29~30을 보면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로 나누어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도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일을 역사 이래로 처음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여 이것에 대하여 회의를 합니다.

피고인 베냐민 지파를 뺀 11개 지파는 미스바에 모여 레위인의 보고를 듣습니다. 그 이스라엘 군중들은 그 레위인의 첩살인 사건을 레위인에게 들으면서 이 일은 당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레위인은 교묘하게 자기가 남을 가해한 것이나 자신의 부도덕한 것은 전혀 말하지 않고 자신이 피해받은 것만 이야기합니다.

군중은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군중들은 기브아에 거하는 ‘베냐민 지파를 죽여라’ 하며 소리치고 난리를 부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11개 지파가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를 쳐서 능욕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조그마한 레위인 첩 사건이 크게 확대되어 이제는 무모한 전쟁으로 번진 것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공격하는 11개 지파나 공격받는 베냐민 지파나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를 똥 묻은 개라 한다면 나머지 이스라엘 11개 지파를 사건에 대한 진실한 분별력을 상실한 겨 묻은 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부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수행과정을 보면 우선 이스라엘의 11개 지파가 기브아의 베냐민 지파를 치기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기를 ‘가서 쳐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하나님은 가라 그래서 갔는데 첫 번 전쟁에 기브아 베냐민 지파에게 대패하여 2만 2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승리한다고 해서 갔는데 대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단히 실망하고 다시 군사를 정비해 하나님께 울면서 전쟁을 하면 이길 수 있느냐고 다시 물어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길 수 있다고 전쟁을 하라’라고 다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전쟁을 했는데 11개 지파가 또 대패하여 일만 팔천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별력이 생겨서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벧엘에 올라가 울며 금식하고 회개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자기 자신을 정결케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쟁에 승리할 수 있냐고 여호와께 다시 묻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래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너희들 손에 진정 붙이리라고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전쟁을 했더니 이스라엘 11개 지파는 대승을 거두고 베냐민 지파는 거의 전멸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정결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11개 지파도 심판하시고 베냐민 지파도 심판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성경 이야기의 과정을 보면서 개혁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의미와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인의 진정한 개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자기의 마음부터 개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개혁은 자기 개혁부터입니다.

자기 자신의 가해적 측면이나 부도덕성을 쉽게 망각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는 남들에게는 아주 수준 높은 윤리를 요구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은 본능적으로 아주 관대하게 처리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잘 모릅니다.

인간은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관계 속에서 늘 자기 자신은 피해자라고만 생각하지 자기 자신이 가해자였던 것은 쉽게 망각합니다. 그만큼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모릅니다. 따라서 남들에게 개혁을 요구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개혁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인의 개혁은 남을 개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개혁시키는 것입니다. 중세의 교회가 왜 타락했는지 아십니까. 남을 개혁하려고 자기 자신을 개혁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개혁을 멈추지 않고 항상 개혁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인격과 성품을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에 대한 개혁의 고삐를 풀어놓으면 우리는 타락하게 됩니다.

매 순간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타락하게 됩니다. 매 순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를 개혁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개혁해야 할 대상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저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사순 절기에 회개합니다. 왜 우리 사회는 이단들이 이렇게 득세를 할까요? 저 자신이 목회를 진실하게 하지 못해서입니다. 이 사순절에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출발을 결심해 봅니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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