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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기사승인 2020.03.12  01: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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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 허태수 목사

캐스린 스토킷의 소설 ‘헬프’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이란 반드시 넘어야 할 선(線)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을 그려낸 소설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 미국 미시시피가 소설의 무대다. 작가 지망생인 스키터는 가정부 아이빌린과 미니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을 받으면서도 참고 사는 것을 지켜보면서 괴로워한다. 더군다나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힐리가 유색인 전용 화장실을 집마다 만들어 백인의 위생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스키터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스키터는 아이빌린에게 은밀하게 말한다. 현실을 바꿔 볼 생각이 없냐고 말이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출판할 수 있다면 허락해 주겠냐고 하면서. 결국 스키터는 가정부들의 파란만장한 라이프스토리를 타이핑하면서 낯선 감동을 느낀다.

백인으로 태어나 항상 가정부를 끼고 살았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던 차별과 억압의 에피소드들을 막상 당사자의 증언으로 직접 들으니, 완전히 새로운 고백이었다. 3인칭의 머나먼 풍경이 1인칭의 생생한 고백이 되는 순간 흑인과 백인 사이에 놓인 굵은 실선은 희미해져 버렸다. 가정부 미니는 스스로 백인과 흑인 사이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때 아이 빌린이 속삭인다.

“선(線)은 처음부터 없었어, 사람들이 마치 처음부터 선이란 게 있는 것처럼 꾸며낸 거야.” 

붙박이처럼 곁에 붙어 있다가 쓸모없어지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던 가정부들의 마음에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니.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던 선을 뛰어넘으니, 원래부터 그 선은 없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주어진 선’이라 믿는 것은 ‘날조된 선’이었던 것이다.

만약 흑인 가정부들이 스키터의 유혹 아닌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녀들은 ‘날조된 선’에 걸려 평생 살아야 했을 것이다. 선을 넘는 일은 어렵고도 쉬운 일이다. 선을 넘는 것은 우선 갖가지 의무의 갑옷, 정해진 메뉴얼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는 모두가 싫어하는 괴팍한 작가 멜빈과 병든 아들에 대한 의무로 자기 삶을 포기해온 식당 종업원 캐럴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유달은 ‘내 것-남의 것’이라는 배타적 선 긋기를 통해 우아한 삶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내 것이 아니라며 이웃집 강아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외식 때마다 ‘유아 전용 포크’를 지참한다. 보도블록이나 욕실 타일의 금조차 밟지 못하고 산다. 어느 날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함으로써 ‘당신을 위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다. 그녀의 사랑을 얻은 날, 그는 처음으로 금을 밟는 순간의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금을 밟는 순간, 선을 넘는 순간 큰일 날 줄 알았건만, 눈 질끈 감고 금을 밟으니 비로소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해방의 출구가 열렸다.

세상의 곳곳에는 온갖 경계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 경계들은 억압의 지도임과 동시에 해방의 지도이기도 하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 대해서 그렇다. 오늘날 금기의 경계, 넘지 말아야 할 사회적인 억압들은 바로 이 사회를 탈주할 수 있는 지도이기도 하다. 그게 제도이던, 관습이던, 종교적인 교리던, 바이러스의 위협이던지 말이다. 너무 위험해서 어쩌면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선을 넘는 순간 기적은 시작된다. 선은 넘어야 제맛이고, 금은 밟으라고 있는 것이라는 게 영화와 소설이 주는 가르침이라면, 우리가 지금 그것을 실행할 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가 힘들게 보내고 있다. 몸과 삶만 힘든 게 아니다. 점점 사람 사이의 경계가 깊어지고 집단에 대한 배타가 당위성을 얻어가는 형국이다.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 보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훌륭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안이 불행을 생산하고, 환대가 아닌 배타나 경계가 더욱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의심이나 경계의 과잉으로 불안을 키우고, 그 때문에 누구 하나 불행해지는 일이 없도록 묵묵히 자기 주변을 돌보며 차분한 자세로 임할 때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수고가 필요하고,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더 진실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축복과 은총의 기회라는 걸 알아야 한다. 바이러스의 전염으로 인한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는 공존과 상생이라는 참된 인간성과 존엄을 공부해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다툼과 상처, 무례한 경계와 금긋기 그리고 무차별한 의심을 넘어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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