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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의 의미

기사승인 2020.02.01  06: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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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한빛교회 김태원 목사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3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4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5 

레위기 16장 3~5절

 

옛날 어르신들은 설날이 지나야 비로소 나이 한 살 더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이 성숙해지고 새롭게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연초마다 한 해를 새롭게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새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이 다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새로운 삶을 원한다면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과 더불어 어떠한 삶이 새로운 삶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합니다. 레위기 16장 3절에서 5절까지를 보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새로움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아론에게 알려준 말입니다. 그것은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성소에 들어오려고 할 때 어떠한 몸차림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16장 4절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새롭고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세마포(모시)로 만든 옷, 띠와 모자를 쓰고 반드시 목욕하고 그 옷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대제사장이 희생 제사를 집례할 때는 세상 때를 벗어버리고 새롭고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 항상 새롭고 거룩한 마음으로 들어와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의 할머니께서는 불교를 믿다가 마지막에 예수님을 믿고 개종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10년 동안 새벽기도를 하셨는데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새로운 몸, 새로운 마음으로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목욕재계하고 새벽기도를 하듯, 새해를 출발하기에 앞서 우리도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러면 새롭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항상 새로운 마음을 갖자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새로운 마음인지 알아야 합니다. 네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께 붙잡히면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구별해 세울 때 거룩한 삶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 자체는 거룩하지도, 거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때 그의 인생은 거룩한 삶이 됩니다. 우리가 새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지고 질서가 잡히며 거룩하게 되는 새로움을 맛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올 한 해도 삶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가꾸어 반복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좋은 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새롭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깨끗함(Clearness)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옷을 샀을 때 새로운 기분이 나는 것은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오랫동안 입은 옷이라도 그 옷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입으면 우리는 새로움(Newness)을 경험합니다. 아무리 오랜된 옷이라 하더라도 빨고 깨끗이 손질하면 새 옷(The new clothes)은 아니지만 새로운 옷(The renewed clothes)이 될 수 있습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사랑의 하우스’라는 집을 지어주는 프로그램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해서 깨끗하게 새로운 집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래된 집도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록 영, 육신이 죄로 인해 더럽혀졌다 하더라도 회개함으로 우리는 새로운 사람(The redeemed person)이 될 수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것을 회개라 합니다.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곧바로 타락한 바로 그런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The new creature)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새롭다는 것은 좋은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과 출발이 중요합니다. 마라톤, 수영 등은 좋은 출발이 경기를 좌우합니다. 신영복 시인의 ‘처음처럼’이라는 시를 보면,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시민은 노래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새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반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과 단절된 새로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좋은 출발을 위해서는 반복의 연속이라고 생각되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맞이하는 1년도 계속 반복됩니다. 그 반복 속에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 한 달도 처음과 끝을 갖고 있지만 계속 반복됩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에서 우리는 수많은 반복된 처음(시작)과 반복된 끝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반복된 처음을 늘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밥을 아침, 점심, 저녁 반복해서 먹을 때마다 새로운 마음이듯이 매번 예배를 드리러 올 때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반복합니다. 
반복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반복을 즐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반복을 훈련적 의미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반복을 즐기는 것, 즉 쾌락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그래서 반복할 때마다 좋은 출발, 좋은 ‘처음’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도 반복하면 싫증이 납니다. 심지어 찬송가도 반복하면 싫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왜 싫증이 날까요? 즐기는 것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반면에 반복을 훈련으로 관점으로 보면 반복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줍니다. 비록 인생이 힘들고 반복되어도 훈련의 과정으로 여기면 매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 한국 여자하키 국가대표팀의 별명이 독사였던 전설적인 박영조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변변치 않은 한국의 하키팀이 어떻게 금메달, 동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대답했습니다. “훈련밖에 없습니다. 훈련이 기적을 낳았지요.”

그 훈련이라는 말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훈련은 반복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삶은 반복 그 자체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그 반복된 삶을 즐기려고 한다면 금방 싫증을 느끼고 삶이 권태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복된 삶을 천국을 준비하는 훈련으로 바라볼 때는 여러분의 삶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와 기적이 일어나시길 바라십시오. 반복 속에서 수많은 처음(좋은 시작)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나쁜 반복은 나쁜 처음, 나쁜 시작을 계속 양산해내고 좋은 반복은 좋은 처음, 좋은 시작을 계속 양산해냅니다.

가끔 사람의 행동 능력이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늘 좋은 행동만 하고 나쁜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사람의 능력일까요?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능력일 뿐이지 사람의 능력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두세 번 해보고 좋지 않음을 알았다면 끝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능력이고 두세 번 해보고 좋음을 알았다면 계속 반복 실행해서 좋은 기적을 체험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능력입니다.

세 번째, 새롭다는 것은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질서의 기본은 각 사물이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놓일 때 주변의 환경뿐만 아니라 그 물건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어수선하거나 뒤죽박죽이 된 방 안의 물건들을 가지런히 제자리에다 놓으면 새로워집니다. 겉옷은 겉에다 입고 속옷은 속에다 입으면 정결하게 보입니다. 아래층에 둘 것은 아래층에 두고 위 층에 둘 것은 위층에 두면 질서가 잡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혼돈적인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질서가 잡힌 것을 우리는 새롭다고 합니다. 창세기 1장 2~3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가운데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혼돈한 것이 없어지고 질서가 잡힌 것입니다. 무질서하다가 하나님이 한마디 하시면 질서가 잡힙니다. 혼돈의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심으로 온 세상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혼란스럽습니다.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질서가 잡히고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움이란 지금까지 무질서한 삶을 살아왔던 분이 삶의 질서를 잡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한 해를 새롭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혼란과 무질서의 삶의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돈되고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 새롭다는 것은 특별히 신자에게 있어서는 거룩한 것을 의미합니다. 평소에 즐길 수 있는 포도주와 빵이 성만찬 상에 오르면 그것은 단순한 포도주와 빵이 아니라 거룩한 빵이 됩니다. 평범한 나무토막으로 십자가를 만들면 거룩한 나무가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4절에 보면 모시라는 것이 그냥 평범한 옷의 재료인데 그것을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입게 되면 거룩한 옷이 됩니다. 교회 땅은 평범한 땅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 땅 위에 서 있기에 그 땅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멀치아 엘리아데는 이것을 세속적인 땅이 거룩한 땅으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새롭다는 것은 재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재료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느냐입니다. 또 재료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어떠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이 평범한 사람이 하나님께 붙잡히면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구별하여서 세울 때 여러분은 거룩한 삶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 자체는 거룩하지도, 거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때 그의 인생은 거룩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새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삶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깨끗해지고 질서가 잡히며 거룩하게 되는 새로움을 맛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올 한 해도 삶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가꾸어 반복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좋은 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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