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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의 2020년이다

기사승인 2019.12.31  20: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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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 허태수 목사

나무를 태우고 난 후에 얻는 게 숯이다. 물론 잘 태워야 숯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그만 재가 된다. 숯과 재는 그 본질이 지닌 에너지의 지속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숯은 나무가 타고 남은 것이라 해도 다시 열을 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재는 나무가 그 원류이긴 하지만 다시는 어떤 양태의 에너지도 지니지 못한 무기물이 되고 만다.

나무는 살아 있을 때 물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물을 운동 에너지로 써서 줄기와 잎사귀와 열매를 맺게 된다. 이를 인생에 비유하자면 청장년기의 왕성한 세상살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일하고 돈 벌고 즐기고 그러는 시기다. 폴 니터의 말로 하자면 여름이다.

그러나 보라. 이렇게 물을 에너지로 쓰던 것들이 점차 사그라져서 땅속에 묻혀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열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만약 나무가 물기를 한없이 빨아올리며 여태까지 살아 있다면, 자동차는 어찌 타고 다니며 난방은 어떻게 하고, 밥은 어찌 지어 먹는단 말인가? 때가 되면 나무는 스스로를 변모시켜 숯이 되어야 한다. 아니 자신을 불구덩이 속에 던져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이 예수님의 일생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본래 빛이시던 그는 인간들의 삶의 속성인 물의 세계, 물화의 세계, 물질의 세계, 욕망의 세계 즉 물을 에너지로 쓰는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는 33년을, 공생에 3년을 보통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병자와 굶주린 사람, 소외된 사람과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끌어올리고, 살리면서 사셨다. 완전히 물의 에너지로 사시던 시기였다. 인간들을 위해, 인간처럼 말이다.

그러던 분이 갑자기 자기를 태우는 불의 세계로 들어가셨다. 자기 내면으로, 완전히 다른 에너지로 변모시키셨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는 다른 에너지가 되어 다시 세상으로 오셨지만, 누구도 그를 인지, 감지, 포용할 수 없었다. 그를 알기 위해서는 물 에너지를 쓰는 우리들이 자기를 완전히 탈바꿈시켜 예수처럼 불의 세계, 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성령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것이 우리가 성령의 사람, 불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숯이 되어야 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숯에 머물지 않았다. 처음에는 빛이셨고-물이셨고-불이셨지만 마지막으로 다시 빛이 되셨다. 나무에서-숯으로 자기를 이끌고 다시 그는 진리 즉 ‘책’ 되셨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물도 아니고, 숯도 아니고 바로 책 즉, 진리다. 그 진리가 곧 빛이다. 자기를 불에 태워 숯이 되게 함으로 빛의 에너지가 된 것이다.  

나무가 숯이 되고 책이 되는 까닭, 예수의 변모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며 가르침이다. 우리도 각자 나무에서 숯으로 그리고 진리의 사람들로 바뀌어 가야 한다. 항상 물을 필요로 하는 들판이나 산에 머물러 살아서는 안 된다. 인생 그 자체가 늘 물을 필요로 하는 봄이며 여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으로 새로운 문명과 의식의 전환시대에 진입해 있다. 산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며, 인간 의식으로는 현실과 가상이 뒤엉킨 ‘메타포직스’한 세계에 사는 것이다. 하나의 고착된 삶의 방식과 생각은 이미 고물상에도 팔 수 없는 낡은 것들이 되어 있다. 지난날 국민총생산량으로 지표 되던 경제성장도 무효가 되고 있다. 새로운 양태의 가치관과 방향성의 설정이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여!  

젖은 장작을 태워 숯으로 변모하라.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따라 진리의 책이자 빛인 나무를 숯으로, 숯을 책으로 바꾸는 위대한 자존의 연금술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나라 사람’으로, 진리 곧 빛의 사람으로 그 에너지를 전환하라. 더디더라도 그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리교공동체 안에서 이뤄내야 하는 숙명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감리회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감독으로 불러냄을 당한 것이 아닌가? 마르지 않은 장작 같아서 거룩한 감리회 아궁이의 불을 꺼뜨리기만 하던 지난 10년(decade)을 불사르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빛의 에너지를 지닌 공동체로 변모해야 한다. 숯이 되지 못하면 감리회 공동체는 망한다.

이게 우리의 2020년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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