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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 RE-Think’ 하라!

기사승인 2019.11.06  1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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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 목사

감리회는 완전히 화석이 되었는가? 교회가 ‘교회의 생존’을 고민하지는 않은 채 제도의 유지와 구습에 매달려 있다. 여기서 ‘구습’이란 ‘감리회 정치’를 말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모든 움직임은 그 법을 중심으로 정치적으로만 움직이고 있다. 지난주 끝난 제33회 입법의회를 봐도 그렇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거센 파도를 타고 미래를 향하고 있다. 아니, 바로 내일 아침이 그 미래다. 교회가 성장과 감소를 따질 때도 아니고, 감독을 뽑는데 정5로 할지 정1로 할지를 물을 때도 아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변화와 혁신의 시대를 향해 소리 없이 내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리교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너무 암울하고 불안과 공포마저 느껴진다.

변화 없이 지속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구 교회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들의 쇠퇴는 너무 분명하고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북미 교회 헌금의 80%는 55세 이상의 성도로부터 나온다는 통계는 지속 가능한 교회의 모습을 예상하기 어려운 현실을 나타낸다. 비단 북미 교회의 문제일까. 한국교회 그리고 감리교의 현실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미래 역시, 암울해 보이고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이제 한국 감리교회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상황은 분명히 위험하고 절망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돌파가 일어날 수 있는 시점이란 사실 또한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뜨거움과 냉철함을 통해 깨어 있는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감리교회, RE-Think’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감리교회의 생존을 위한 첫 출발점이다. 감리교회의 위기를 논하는 근간에는 교회됨의 본질과 가치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기관이다. 문제는 오랜 관행과 제도에 갇혀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론을 정립하지 못하고 점점 더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참된 교회는 건물에 집중하지 않는다. 헌금에도 사활을 걸지 않는다. 교인의 숫자 또한 마찬가지다.

감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세속 자본주의화와 교권 정치의 권력화로 치닫고 있다. 참된 복음은 시대와 문화에 구속되지 않고, 자본에 침몰 되지 말아야 하고, 욕망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규칙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감리회는 시대적 물음에 응답하여 대응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궁극적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참된 변화는 제도나 법에 갇히지 말아야 하는데도 여전히 그 법이 감리회를 옥죄고 있다. 교회는 오직 복음으로 해방될 수 있어야 한다. 

혁명적인 변화 없이는 감리교회의 존재가 존속되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분명하고 사역은 단순해져야 하고, 감리회 법은 복음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꿈을 꿔야 한다. 이를 위해 비본질적인 것은 버려야 한다. 목사의 잔밥(짠밥)이 늘고 교회가 웬만하면 ‘감독’이나 하려고 목숨 걸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작은 반드시 본질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새로운 모험의 길이 고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진정한 가치 위에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젊은 목회자들은 용기를 내서 투쟁해야 한다. 변화시키는 힘에 대해서 ‘RE-Think’ 해야 한다. 
“성경이 예언서 기능을 상실 한지 이미 모래 되었다.”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에 나오는 말이다. 해서 호텔에 성경 대신 시오랑의 책을 비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시오랑의 책을 성경 대신 들고 다니며 읽는다는 루마니아 출신의 올가 토카르추크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탔다. 그녀의 노벨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멈추는 자, 화석이 될 거야.” 

그녀는 이 소설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쓰고 있다. 인간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고정적이며 확실한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녀는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라고 했다. 인생, 종교?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변화하는 세상과 교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여전히 선이거나 면으로만 바라보는가!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인지, 젊은 목사들이 무엇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걸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발견할 수 있는지, 제대로 된 방향을 선택했는지…. 왜 그런 건 묻지 않고 입법을 하고, 선거 끝나면 다시 선거판이 되는 제도를 붙들고 있는지, 왜 감리교회는 ‘RE-Think’ 하지 않는가? 

‘멈추는 자, 화석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 감리회는 이미 화석이 되었는가?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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