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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어디가 병들었고 처방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19.10.17  17: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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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에 열릴 제33회 총회 입법의회에 대비한 장정개정위원회가 조직되고 활동을 개시하면서 감리회 본부 안팎에서는 상정 안건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본부 통계에 의하면, 감리회는 2010년 10월을 기준으로 158만 7,385명의 신자 수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서 2018년 7월 현재 16%에 해당하는 25만 3,180명이 감소한 133만 4,178명으로 추락했다. 지난 10년여 동안 끊임없이 반복된 감독회장·감독 선거를 둘러싼 소송전은 무엇이 문제이고 왜 이토록 장기전으로 반복돼야 하는지, 심지어 적법한 신임 감독회장이 선출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재임하는 자리인 감독회장 직무대행마저 종횡무진으로 폭주하던 일탈 행위를 보면서 감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럽고 통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오늘의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분명 벌써 오래전부터 증세가 매우 위중한 중증환자가 되어 장기간 와병(臥病) 중에 있다. 이렇게 시름시름 쇠락(衰落)할 것인가? 아니면 웨슬리언의 긍지를 살려 다시 한번 웅비(雄飛)할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 제33회 총회 입법의회가 위기를 기회로 전환 시켜야 할 마지막 기회이다. 병인(病因)을 바르게 진단하고 과감한 개혁의 아젠다를 감리회 구성원 모두로부터 널리 수렴해서 심혈을 기울여 감리회의 환부를 과감하고 단호하게 시술(施術)해야 한다. 병석에 오래 누워 있으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상식이다.

먼저 의회법 제147조(총회실행부위원회의 조직) 규정에서 감독회장·각 연회 감독에게 ‘직권상 총회실행부위원’이란 호칭의 직위를 신설 부여하는 개정안이 1996년도 총회 입법의회에서 단 1표 차로 통과됨에 따라 그때로부터 일탈의 역사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감리회가 오늘날 소송전 심연(深淵)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원인은 바로 동 조항에 의거 감독회장이 제왕적 직능을 행사하게 된 때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총회가 닫힌 동안에 총회의 모든 직능을 대행하는 총회실행부위원회가 감독회장 자의로 전횡하게 된 소산물(所産物)이다. 이는 한시바삐 감리회의 역사적 전통과 정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당초의 교역자 평신도 동수원칙대로 환원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후 역대 감독회장은 이 제도에 안주해서 오히려 남선교회, 여선교회, 청장년선교회, 청년회, 교회학교 전국연합회 회장을 ‘직권상 총회실행부위원’ 반열에 추가 삽입했으나 교역자 평신도 동수 원칙을 이루지 못했을뿐더러 의회제도에 유례가 없는 기형적 제도 도입으로 인하여 장정의 엄중성을 훼손하고 부작용은 날로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법 제6조는 “감리회의 기본체제는 의회제도에 의한 감독제이다”라고 규정하였고, 장정 제1편 역사와 교리 제1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 제2절 ‘기독교대한감리회 자치선교시대’에서 ‘1930년 12월 2일 “기독교조선감리회”창립총회가 개최되고 … “그리고 모든 의회구성은 평신도와 성직자 동수로 하여 평신도의 역할을 증대시켰으며”라는 역사적 선언을 누가 감히 파기 변혁(變革)시킬 수 있단 말인가? 역사적 선언대로 회귀(回歸)할 때 분명 회복의 정도(正道)가 열린다.

그 다음을 꼽자면 감독회장 제도는 현행 전임 제도를 존치시켜서 엄중한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의 길을 찾는데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특정인을 위한 장정개정 시도라면 더욱 그렇다.

특히 감독회장·감독 입후보자의 형사처분 유무에 대한 자격 요건 완화를 도모한다면 이는 그동안 감리회가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했던 감독회장 성결성 담보정책을 스스로 포기하고 백기를 들겠다는 것인가? 오늘날과 같은 엄중한 선교환경에서는 더욱 보강할 정책과제다.

끝으로 교역자와 장로의 정년연장 문제가 시도(試圖)된다면 이는 그동안 끊임없이 반복된 감리회의 타락상을 집약시킨 교역자와 장로의 민낯을 그대로 표출하는 최악의 시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지난 5월 한 일간지 기사에는 ‘70세 정년’이란 제하의 글에서 모두(冒頭)에 이런 대목이 있다. “2010년 9월 ‘정년(停年) 연장’ 문제로 프랑스가 뒤집어졌다. 정부에서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자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대’를 외쳤다”고 되어 있다.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가? 그 유명한 프랑스혁명은 차치(且置)하고라도 ‘노란 조끼’는 프랑스 정부가 기후변화대책으로 유류세 인상을 발표하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작년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항의 시위·집회를 열면서 시작됐다. 마크롱 정부가 부유세는 낮춰놓고 서민은 수탈한다며 투석, 방화, 약탈로 발전했다. 기후변화는 본질적으로 세대 갈등을 내포한다. 마크롱 대통령도 노란조끼의 압력을 못 이겨 유류세 인상을 유보했다.

감리회도 3개 신학대학원 졸업생이 ‘대리기사’, ‘노동 잡부’ 등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황을 목도할 때, ‘노란조끼’대신 ‘빨간 조끼’ 행렬이라도 등장시킨다면 어찌할 것인가? 자중자애(自重自愛)를 갈망한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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