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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선교주일을 지킵시다

기사승인 2019.09.04  14: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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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

농촌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되어 왔고, 그래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농촌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농촌을 살리고자 애를 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젊은이들의 이농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농촌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무지한 사람이다. 한번은 농사짓는 것을 예로 들어 설교한 적이 있었다. “밭에서 추수하는 고구마도 다 씨를 뿌려야 때가 되매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의기양양하게 설교한 적이 있었다. 예배 후 나를 많이 응원해주는 한 성도님이 말없이 다가오셔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목사님 고구마는 씨를 뿌리는 게 아니에요”라며 설교의 잘못된 부분을 알게 해 주신 적이 있다. 많이 부끄러웠다. 너무 무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쩜 이 나이가 되도록 매일 먹는 농산물에 대해 이리도 무식할 수 있는지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까지 했다. 동시에 많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늘상 들으면서도 한 번도 마음으로 농촌의 현실과 농촌교회의 어려움에 대해 마음 열지 않고 있는 나의 이기적 모습이 더욱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그 때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내 모습은 농촌과 전혀 상관없는, 아예 농촌이란 곳은 존재하지도 않는 듯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한심해 보인 듯 했다. 요 얼마 전, 친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농촌선교주일을 지키자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마치 도둑질하다가 들킨 듯 화들짝 놀라 절대 그럴 수 없노라 말씀드렸다. 농촌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어서 글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더니 선배님은 “그러니까 당신이 글을 써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를 설득 시켰다.

그 날부터 ‘농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부담감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교회 마당에 솟아 나온 잡초만 봐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원고 마감시간이 가까울수록 부담감은 점점 커져 이젠 거의 시련이 되었다. 네이버를 뒤적이며 통계자료를 보고, 농촌의 현실과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며 목회자의 역할과 도시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글을 써볼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한 거 같아 그런 짓은 안 하기로 했다. 지금도 뭘 써야 할지 몰라 넋두리를 하고 있다. 지금 나의 솔직한 마음은 마치 하나님께서 “너 농촌과 농촌선교에 대해 내가 신경 쓰라고 했지..” 하시며 벌을 세우고 계신 느낌이다.

농촌에 대해 무엇이든 써 보려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아 이런 저런 넋두리를 하다 보니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5년 전쯤인가 우리나라의 식량문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여러 다국적 기업에서 식량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수확을 올리기 위해 서로 앞 다투어 종자를 개량하거나 유전자 변형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자 노력하는 한 기독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우리 종자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내 관심 있는 교인들을 소집했고, 한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유전자 변형된 종자가 아닌 우리만의 오리지널 종자를 찾고자 애를 썼던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종자들이 옛날 우리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씨앗을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국적 기업에서 나눠주는 종자를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씨앗의 이름이 ‘자살 씨앗’이라는 점이었다. ‘자살 씨앗’이란 한번 심겨지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지만, 그 열매에서 얻은 씨앗을 다시 심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도록 유전자 변형을 한 씨앗을 말한다. 즉, 다시 씨를 심기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에서 나눠주는 종자를 다시 얻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이 씨앗을 얻기 위해서는 높은 금액을 치러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씨앗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씨앗에만 어울리는 비료도 같이 구매해야 한다. 아무리 높은 가격을 불러도 살 수밖에 없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한국이 앞으로 유전자 변형되지 않은 종자를 많이 확보해두지 않게 되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국적 기업의 씨앗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경제전쟁 보다 더 심각한 식량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하게 또 하나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전자 변형된 ‘자살 씨앗’의 부작용이다. 이미 우린 알게 모르게 자살 씨앗으로부터 얻어진 열매를 많이 먹으며 살고 있다. 요즘 젊은 부부들 사이에 임신이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어쩌면 자살 씨앗의 영향인지도 모를 일이다.

목회를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목회자들의 ‘목회철학’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목사님들의 목회 스타일이나 목회 결과가 다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 목회도 마찬가지다. 많은 수확을 올려 돈을 많이 벌고, 그래서 농촌지역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농촌 목회의 본질이 되어선 안 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질서를 잘 보존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함으로 사람들의 영육 간 강건함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목회자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좀 더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로 인한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번 농촌선교주일에 즈음하여 농촌에 대해 무지하기 그지없는 자가 농촌선교주일을 지키자는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농촌선교를 위해 농촌선교주일을 지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농촌선교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은 농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양심이 화인 맞은 시대이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판을 치고 있는 시대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양심이 되어,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하고 제공하여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되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농촌에서 이런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들을 지원하며 기도하자는 것, 이것이 농촌선교주일을 지키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며 글을 맺는다.

박동찬 목사(일산광림교회)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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