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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버나드가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기사승인 2019.08.21  15: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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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천 교수(협성대 기독교영성학)

세상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길에도 순서가 있다. 이번 주는 버나드가 말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싶다.

버나드는 그의 책 하나님의 사랑- On the Love of God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는데 3장과 4장에서  다루고 있다. 3장과 4장은 그 주제가 연관되어 있기에 하나로 묶어서 볼 수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런데 이것은 기독교 영성가들이 전통적으로 걸어갔던 영적 진보의 세 단계인 정화, 조명, 연합의 길과 유사하다. 그리고 그 영성의 길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무는 것에 대하여 버나드는 구체적으로 영혼의 열정, 마음의 청결, 세상에서의 분리, 사랑의 불꽃, 거룩한 관상,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친밀한 교제 등에 대하여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정화, 조명, 연합이라는 영적 진보의 과정에 따라 재배열할 수 있다. 그러면 세상에서의 분리, 마음의 청결, 영혼의 열정, 친밀한 교제, 거룩한 관상, 사랑의 불꽃,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세상에서의 분리에 대하여 버나드는 물리적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에서의 분리란 세상적 즐거움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는”(딤전 6:17)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기쁨 그 자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편 기자의 말처럼 “나는…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5)가 매일 고백되는 신앙을 의미한다.

둘째, 마음의 청결은 묵상 가운데 갈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까지”(고후 3:18) 묵상 가운데 부드러운 안식을 취하며 갈망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의미에서의 청결이란 마음을 완전히 비우는 무념무상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만을 갈망하는 상태를 말한다. 잡념 없이 거룩한 한 가지만을 원하며 집중하는 것이 청결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영혼의 열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신자가 그 느낌에 비례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버나드는 아가서 1장 3절에 대한 비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부가 사랑의 열정에 불붙어 신속히 달려가면서도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대상인 여인은 자신의 가슴이 사랑으로 충만할 때 조차도 자신의 사랑이 너무 작다고 느낍니다. … 그것은 마치 지극히 작은 양의 모래가 먼저 사랑하시고 온전히 구원 사업에 관여하시는 분으로 계시되신 하나님의 장엄하신 사랑에 응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비록 자신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 받는 사랑에 비해 자신의 사랑은 미흡한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사랑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것이다.

넷째,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열정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시작된다. 이 깊은 교제를 설명하기 위해 버나드는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라는 아가서 2장 6절을 인용한다. 또한 이것을 “왼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면서 드러내신 무한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상징하고, 오른손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복된 이상과 그들이 지엄하신 분의 임재 안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즉, 깊은 교제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영혼의 즐거움을 의미한다.

다섯째, 이렇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신자는 거룩한 관상을 경험하게 된다. 관상이란 간단히 말하면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지복이란 존재론적인 경험으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압도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상태에 대하여 버나드는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이끌린 영혼은 그 어떤 대등물도 멸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한편, 직관이란 인식론적인 경험으로 맑고 순수한 사유만 활동하는 가운데 인생과 우주와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궁극적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영혼의 깊은 곳에서 지혜의 샘물이 솟아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관상의 상태는 신자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한다. 신적 사랑의 임재 안에서 신적 생명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신적 생명의 경험에 대하여 버나드는 “그와 같이 큰 자비, 그와 같이 은혜롭고 또 그렇게 가끔 증명되는 사랑, 그와 같이 예기치 못한 겸손, 그와 같이 바라지 않던 선하심, 그와 같이 끈질긴 온유함, 그와 같이 놀라운 친절”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그렇게 가끔 증명되는 사랑’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영혼의 꼭대기에 부어지는 사랑을 말한다. 그러한 상태는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의 상태가 된다. 

밤새 들리는 풀벌레 노래가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 계절에 우리의 영혼이 신적 생명에 깊이 젖어 보기를 소망하는 한 주가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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