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시편 19편> 세상 다스리시는 주의 묘한 법乾坤與妙法

기사승인 2019.08.21  15:16:05

공유
default_news_ad2

- 송대선 목사(영파교회)

1  乾坤揭主榮 碧穹布化工  2  朝朝宣宏旨 夜夜傳微衷
3  默默無一語 敎在不言中  4  周行遍大地 妙音送長風  
7  妙法洵全美 我魂得歸依     靈證洵萬確 童蒙識玄機
8  玉律豈有瑕 祇守心自怡     聖典何皎潔 悅目驚新奇 
12 誰能悟其愆? 惟主濯其疵  13 去我驕矜意 莫令傲慢滋 
   庶可無大過 庶免染塵緇   14  願我口所言 與我心所想  
   悉能愜聖心 悉能慰天慈    主乃我磐石 微主吾誰歸?  <한시원본 : 오경웅의 ‘성영역의’>

 

옮김 
1 천지가 주의 영광 드러내 보이고 푸른 하늘은 지으신 이의 솜씨 나타내네
2 낮은 낮에게 크신 주님의 뜻 선포하고 밤은 밤에게 그 깊은 심중 전하네
3 묵묵히 한마디의 말 없으나 말 없는 가르침 이루어지도다
4 두루 대지 어디든 다녀보아도 소리 없는 묘음 멀리멀리 퍼지네
7 하나님의 법 진실로 아름다워 내 영혼 정녕 의지처를 얻으며
   주님의 증거는 진실로 참되니 어리석은 이조차 묘한 이치 알게 하네
8 하나님 말씀에 어찌 허물 있으랴 지키기만 하면 기쁨이 솟고
   거룩한 말씀 얼마나 순결한가 말씀의 신비에 눈을 뗄 수 없구나
12 누가 능히 자기 허물을 깨달아 알랴? 주님만이 그 허물 씻어주시네
13 제 교만한 생각 제하여 주시고 오만하고 헛된 생각 자라지 않게 하소서
     바라건대 큰 허물없게 하시고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14 제 입에서 나오는 말 떠오르는 생각들 이 모두 주님 뜻에 합당하게 하시고
     주님의 자비에 맞갖게 하소서 주님 제 반석이시오니
     주님 아니시라면 제가 어디로 돌아가리이까?

 

오늘 우리는 환경이라는 용어로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그 속에 담긴 섭리를 대상화하고 과학이 밝혀낸 일부 사실로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신비가들의 말대로 과학이 ‘어떻게’ 그리되었는지는 알아낼 수 있겠으나 ‘왜?’ 그리되었는지는 영원한 물음에 속한다.

신앙은 ‘어떻게’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왜?’라는 물음 앞에 서는 것이다. 하늘의 운행과 섭리 앞에서 사람이 할 도리는 무엇인가? 옛 사람들은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닮으려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듬고 지킬 때 저 깊은 속에서 기쁨이 우러나온다. 수심자이守心自怡이다.

하늘의 운행과 말없는 자연의 순리와 법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닮아가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신묘한 자연의 이치를 깨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2절의 굉지厷旨와 미충微衷은 같은 의미를 내포하면서도 상호 보완한다. 굉지는 크고 높은 뜻, 전체적인 눈매로 보는 것이며 미충은 세미하고 깊은 뜻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뜻의 양면을 묘사하였다. 7절의 현기玄機는 불교나 도교에서 마음을 깨우치는 오묘한 도리를 뜻한다. 명明 풍유민馮惟敏의 「상조집현빈 희제소주이강성좌할걸휴商調集賢賓 喜第少洲 以江省左轄乞休」라는 노래에 ‘맑은 마음으로 도에 관한 책을 읽고 좋은 벗들과 묘한 이치를 궁리하니 이러한 시간에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되누나’ 淸心讀道書 古談窮妙理 这其間早 已悟玄機(청심독도서 고담궁묘리 저기간조 이오현기)라고 하였다. 하늘의 뜻으로 읽어 천기天機로도 읽을 수 있다. 같은 절의 동몽童蒙은 어리석고 우매하다는 의미로 『주역』 「몽蒙」 괘에 ‘몽은 가르침이니 형통한다. 내가 동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찾아야한다.’蒙亨匪我求童蒙 童蒙求我(몽형비아구동몽 동몽구아)라고 하였다. 8절의 열목悅目은 상심열목爽心悅目의 줄임말로 보기에 너무 즐겁고 기쁘다는 의미를 지녔다. 같은 절의 하瑕는 본래 옥玉에 난 작은 흠결인데 그럼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후에 일체의 결점이나 문제를 뜻하게 되어 12절의 자疵와 함께 하자 瑕疵로 쓰인다.

오경웅은 이 시편에 철학자 칸트의 언급을 덧붙였다. ‘머리 위 하늘에는 별이 있으며 마음 가운데는 하늘이 부여한 양심이 있어 늘 사람으로 하여금 늠연凜然하게 하고 송연悚然하게 하니 이를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진술이 이 시편의 주석이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일반기사

문화

1 2 3 4
item53

교육

1 2 3 4
item54

미션

1 2 3 4
item55

오피니언

More Section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