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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전략적 측면에서 본 호남지역 감리교회 성장에 관한 소고 <상>

기사승인 2019.08.21  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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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융봉 목사(호남선교연회 군산교회)

들어가는 말

한국 선교의 역사는 선교사의 활동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1884년 미국 북 장로회 소속인 알렌이 의사의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의료선교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복음의 전래는 그 이듬해인 1885년 부활절에 북 장로회 소속 언더우드 선교사와 북 감리회 소속 아펜젤러 선교사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남지역도 기독교역사의 기틀을 마련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외국 선교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 선교사들을 통해서 1903년부터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호남 기독교의 부흥의 기운은 1907년에 그 절정에 달하였다. 이 놀라운 대 부흥의 역사는 역시 장로교 선교사가 그 중심이었다. 그 후 장로교는 교회 부흥 및 신앙의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고, 특히 당시 억압받는 민족의 고통 속에서도 민족적 의지를 고창하여 비록 일제의 보복과 억압으로 교회는 큰 시련을 당하였지만 결국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기독교가 호남지역에서 큰 공헌을 하게 되어 자리매김하는 토양이 되었다.

한편 호남지역의 감리회 선교의 열악성의 이유는 알다시피 일찍이 초창기 한반도 선교정책 중 선교지역의 분할이라는 네비우스정책 실행에 따른 서울, 경기도, 강원도 일부 황해도 일부 등만 국한된 선교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이곳 호남에는 감리회가 뒤 늦게 들어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요즘 기독교대한감리회 호남선교연회는 특별연회로 발돋움을 통하여 새로운 선교의 지평을 넓히고자 준비하고 있다. 타 연회와는 다르게 초교파적인 선교정책상 뒤 늦게 출발한 선교지이기에 규모가 작은 것은 당연하다. 이제 본 소고를 통해서 새로운 호남지역의 감리회 선교전략을 통해서 복음의 현실성을 직시하고 대안을 살핌으로 호남지역에서의 감리회 선교성장을 위한 노력을 하고자 한다.

호남지역 장로교 정착과정

1) 미 남장로교 선교사의 활약
1892년 미 남 장로교 선교사들이 호남지역에 선교를 시작한 이래 활동한 선교사는 모두 190명이다, 이들은 특히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에 선교스테이션을 설립하며 집중적으로 호남선교의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특히 테이트, 레이널즈, 전킨 등 3명의 남 선교사와 매티, 볼링, 리번, 데이비스 등 4명의 여 선교사의 소위 ‘7의 선발대’라고 일컫는 선교사들이 호남지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더욱 호남 선교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한 전도 활동으로 선교의 터전을 마련해 나갔다. 이후 1893년 정해원씨가 전주에 도착해 초가집 두 채에서 예배처소로 마련하고 복음 전파를 시작해 호남지역에서는 최초로 전주 서문교회가 세워졌으며 테이트 선교사의 부인인 잉골드 여사가 세운 예수병원과 함께 호남지역의 복음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특히 호남지방의 장로교 확산과정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 정착단계, 선교사가 도착하여 선교기지를 구축하는 1894-1904년의 11년의 기간이다. 항구도시와 연계되는 수로를 따라 서부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장로교는 확산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대부분 포구 및 수로변에 설립되었다. 둘째, 확산단계, 문화, 행정 등의 상징적인 도시인 전주에 교두보가 확보되고 주요지역에 교회가 설립되는 1905-1923년의 약 18년의 기간으로, 전주, 광주, 나주 등을 교두보로 내륙지방, 해안지방으로 인접효과, 계층효과, 누적효과의 원리로 장로교가 확산되었다. 셋째, 정체단계, 3·1 독립운동 이후 일제의 교회탄압, 선교부의 재정악화 등으로 인해 교회설립수가 감소되는 1924-1942년의 시기로 동부 산간지대와 도서지방으로 장로교가 지체 또는 정체를 보이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확산되었다. 이처럼 선교사들의 활동은 적극적인 선교활동은 물론 호남지역 기독교 발전의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된다.

2) 미션스쿨을 통한 교육
한편 남장로교 한국선교회가 호남에 세운 여러 미션스쿨 존재 목적의 우선순위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불신자인 아이들을 개종시키는 것뿐 아니라, 이미 기독교인이 된 가정에 속한 아이들을 교육하여 이들을 기독교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특히 1901년과 1902년에 전주에서 호남 최초의 기독교계 학교로 탄생한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1937년에 공식적으로 폐교될 때까지 각각 36년, 35년간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전북 지역 학교교육의 요람 역할을 감당했다. 이러한 기독교 교육의 역량은 토착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를 길러내는데 역점을 둔 반면에 학교를 직접 전도의 현장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인인 학생들이 영적으로,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이런 교육을 통한 영적 지도력은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에서 드러나듯이, 호남지역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요람이 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민족의 아픔과 함께 호남지역에 정착한 기독교교육은 복음의 좋은 토양이 되었다.

3) 의료선교를 통한 정착
괄목할 장로교의 정착은 군산에서 드루에 의해 처음 시작된 의료선교일 것이다. 장로교 의료선교사의 의술과 병원선교를 통해 기독교는 다시한번 지역민과 조우하게 된다. 1904년 호남지역에 온 다니엘 선교사는 진료소 수준의 의료 시설을 병원 차원으로 끌어 올린 평가가 있다. 그래서인지 1908년에는 예수병원의 진료 횟수가 1만 번을 넘어서게 되었고, 후임자인 패터슨은 제법 병원의 외형을 확장시키는 한편, 의술의 진정성을 갖고 환자들을 대함으로 병원이 지역 선교의 전초기지의 초석이 되었다. 특히 의사 겸 목사인 유진벨 선교사와 그 가족의 선교활동과 최초의 순교자가 된 오웬 선교사의 활동이 두드러짐으로 한층 호남지역 복음화에 진전을 가져왔다.
한 마디로 호남 전라지역의 장로교의 정착은 선교사를 통한 복음 전파운동, 기독교교육을 통한 영적 지적기반을 마련, 그리고 의료선교를 통해 소외되고 병약한 자를 위한 복음전파에 효과적인 매개체가 되었다. 역시 이 세 가지는 예수님의 사역 중 말씀선포, 가르침, 병든 자를 위한 치유 사역과 맞물리게 되며 호남 지역의 복음의 터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호남기독교박물관 전경.

호남지역 감리교 전래과정

중국과 일본선교사로 활동한 미국 북 감리회 소속의 맥클레이 선교사가 1884년 6월24일 내한하여 최초로 한국에 감리교가 전래되었다. 그는 조선 고종황제로부터 의료 및 교육사업의 허가를 받았고 다음해 1885년 4월 5일 미국 북 감리회 소속의 목사 아펜젤러와 의사 스크랜튼 선교사, 그리고 스크랜튼 여선교사(스크랜튼의 어머니)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한편 아펜젤러 선교사는 정동감리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통해 신식교육을 시도하였으며 1902년 목포로 성서번역자 회의를 하러 가던 중 고군산열도 즉 군산 앞바다 어청도 근처에서 선박충돌사고로 순교하게 된다. 한편 1901년 김창식, 김기범 목사가 한국 개신교 최초의 목사안수 받아 복음의 활성화가 있었지만, 나라를 잃어 가슴 시리던 시절 일제강점 3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침략자들은 우리의 삶을 지배했고, 또 우리의 생활터전과 문화를 그들의 것으로 채운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 때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하면서 시대적으로 군산은 호남지역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길목이 됐었고, 그 시절 군산 인구의 절반이 일본인이었을 정도로 민족의 역사의 아픔 속에도 감리회는 호남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선교 초창기 네비우스 선교지역 분할정책으로 호남에 감리회선교가 제한되었던 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뒤 늦게 시작된 감리회는 1948년 5월5일 남부연회 감리사였던 대전제일교회 서태원목사가 전북 군산지역으로 들어와 최초의 군산교회를 창립한 것을 시초로 호남의 감리교회는 시작이 되었다. 그 이후 호남지역은 1951년 1·4 후퇴 당시 미군의 상륙용 배(L.S.T)에 승선하여 북한 지역의 감리교인들이 군산 및 전라지역 등 호남지역으로 약 6000여 명의 피난민에 섞여 유입해 들어와 호남의 감리교회들이 정착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호남지역 감리교 성장을 위한 선교전략

지역의 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존재해 온 방식을 검토하는 일은 성장 전략에 있어서 참으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죄악이 관영했던 어떤 특정지역에, 선교사들과 전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복음이 전래되어, 수많은 개종과 교회 설립의 에피소드를 거쳐, 오늘과도 같은 지역교회의 번영이 이루어진 역사를 살핌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작업이 곧 그 지역교회의 정체성 곧 ‘주류의 속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래된 기독교의 성격, 선교 본국의 사회적 상황, 지역의 처했던 문명적 배경, 그리고 심지어 지역의 신자들이 복음의 이해도 및 복음의 저항까지도 선교의 정착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지역민의 특성에 따른 독특한 문제의식도 아울러 해결된 조짐이 될 것이다. 비록 뒤 늦게 들어온 호남지역의 감리회 특성 상 양질의 복음을 전하고 호남지역에서 성장하기 위한 짧은 생각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1) 감리회 계통 신학교를 통한 사역자 저변확대
흔히 호남선교연회를 많은 목회자들이 거쳐 지나가는 정거장 이라고 한다. 이 말은 사실 그 동안 많은 목회자들이 호남지역에 진급 중 목회자로 왔다가 3년 이수하고, 목사안수받자마자 타 지역의 부목사나 담임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곧 그 만큼 이 지역이 비전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수도권지역 출신의 목회자들이 이 곳 호남에 와서 목회를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호남지역의 선교는 호남인에게 맡겨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남지역 중심지에 호남을 대표할 만한 감리회 계통의 신학교를 세워서 호남인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호남사람으로 하여금 호남 지역의 선교를 감당하도록 장기적인 교단 차원에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한 예로 장로교는 광주에만 광신대학교, 호신대학교가 있고 전주에 한일신대가 있다. 여기서 졸업하는 예비 목회자 졸업생들이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곳 호남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목회를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장로교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이 호남지역의 연고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목회를 처음부터 이 호남지역에서 시작하게 됨으로 비교적 자립도가 높다. 실제로 자신의 가족 및 동향 학교 지인들과 함께 목회를 시작해서 안정적인 목회를 하는 장로교회가 많다. 그러니 이 곳 호남은 장로교가 부흥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미 알다시피 이 곳 호남선교연회의 대부분의 개체 교회들은 감리회 계통의 신학생 전도사조차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감신과 협성 그리고 목원대학교가 거리가 멀다보니 구하기 어렵다. 할 수 없이 장로교 계통의 신학생 전도사를 구하지만 그들이 일정기간 파트타임으로 섬기다가 바로 장로교 대학원으로 들어가면서 자연히 장로교로 개척 떠나간다. 심지어 이곳 호남선교연회는 수련목회자조차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들의 대부분 이쪽 호남까지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만일 교단차원에서 이 곳 호남에 감리회 계통의 신학교를 세운다면 이 지역의 호남출신 청소년들이 호남의 감리교 신학교를 선택하게 될 것이고 또 그들이 졸업하여 이 곳 그들의 연고권이 있는 호남지역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되며 자연히 호남선교연회의 교회 수는 늘어나게 될 것이며 호남선교연회는 부흥이 될 것이다.

따라서 호남의 감리회계통의 신학교의 설립이 장기적인 목표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곳 호남의 광주 또는 군산에 감리회계통의 신학교(가칭: 웨슬리신학대학)를 세우도록 제안한다. 물론 당장은 힘이 들지만 장기적인 교단 차원의 정책으로 한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정식 대학교 캠퍼스를 준비하는 것부터 쉽지는 않지만, 학기별 학점인정제나 감리회 계통의 잉여 교수진을 순번제로 대체 복무하는 등 부설 감리회 신학교를 세우거나 전문가들이 대안을 연구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가 있다고 본다. 또한 호남지역에 있는 부실대학을 교단차원에서 인수한다거나, 기존 호남지역에 있는 일반대학 내 신학과를 설치하는 방안도 좋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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