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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사랑

기사승인 2019.08.16  09: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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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준순 목사(서울세광교회)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11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12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13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14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15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16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7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18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9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21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22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23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4 <눅 15:11-24>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그림의 원작은 러시아 에미주타르 박물관에 있습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아버지의 두 손에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가슴으로 품어주는 아버지, 탕자는 아버지의 가슴이 고동치는 사랑의 심장소리를 들었을까요? 아버지의 가슴 밑바닥에 고동치는 기쁨과 환희, 저 멀리 있는 아들을 향해 대문으로 달려 나가는 아버지의 사랑과 눈물, 언제나 가슴 졸이며 사는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시지프스 신화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이야기입니다. 시지프스는 신의 비밀을 누설한 벌로 바위를 산위에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아무리 바위를 밀어 올려도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집니다. 평생을 반복해도 바위를 밀어 올리지 못합니다. 이를 보며 죄의 형벌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바위같이 무거운 죄를 밀어 올리지 못합니다. 다시 굴러 떨어집니다. 불순종의 죄도 반복하는 죄입니다. 탕자의 죄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탕자의 죄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사랑의 구원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가난에서 구원을 받고 사랑의 축제가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1) 불순종의 죄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15:18-19)

회개는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는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죄의 짐은 무겁습니다.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평생을 고통당하는 죄의 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은혜의 스타트 포인트는 회개의 기도에 있습니다. 회개의 기도는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고백하면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 열립니다. 죄가 은혜를 막고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은혜는 진정한 은혜가 아닙니다.

2) 사랑의 용서입니다!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눅15:21-22)

아버지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책망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신비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사랑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측량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3) 사랑의 회복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15:22-24)

결혼서약 반지는 결혼의 증표입니다. 그 반지를 낀 손을 성경에 올려놓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혼인의 서약과 선포입니다.
성경은 아들의 지위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2-14)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사랑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는 은혜입니다. 거듭남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을 삶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옷을 입혀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살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이 삶을 이겨내게 하는 힘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거듭남의 사랑에 있음을 기억하며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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