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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다리(Bridge)

기사승인 2019.08.13  23: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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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식 목사(진관교회)

한 학생이 어느 유명한 대학에 수석합격을 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제 뒤에는 밤낮으로 애쓰시고 고생하신 저의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제 뒤에 없었더라면 … 오늘 이 모든 영광을 어머니에게 돌리고 싶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도바울의 역할은 너무나 큽니다. 4차에 걸친 그의 선교여행과 13권의 서신서들은 기독교의 지평을 넓히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의 배후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의 위대한 사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위대하게 보일수록 바나바의 가치는 더욱더 값지게 느껴집니다. 바울이 크게 보일수록 바나바의 가치는 더 빛나게 느껴집니다. 바나바는 어떤 사람일까요?

바나바는 격려와 위로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본래의 이름은 요셉입니다.(행4:36) 바나바라는 이름은 초기교회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바나바 요셉은 언제나 사람을 격려하고 세워주고 상처를 싸매주고 위로하는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이‘요셉은 바나바야, 바나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나중엔 본명은 기억되지 않고 ‘위로의 아들’이란 뜻의 바나바로 기억되었던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 1위였던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나오는 글입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여섯 살 된 수지가 물었습니다. “엄마 지금 뭐 해?”,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있단다.”, “왜?”, “왜냐하면 스미스 부인이 매우 슬프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에 딸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를 입었거든. 그래서 우리가 한동안 돌봐 드려야만 해.”, “왜, 엄마?” “수지야, 누군가 아주 슬플 때는 음식을 만든다거나 집안 청소 같은 일들을 하기 힘들단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고, 스미스 부인은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 드려야지. 우리 착한 수지도 스미스 부인의 가슴에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렴.”

몇 분 뒤, 수지는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스미스 부인의 집에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문을 연 스미스 부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온몸은 힘을 잃어버린 채 늘어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니, 수지야?”,“아줌마,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줌마가 딸을 잃어서 가슴에 상처가 났고, 그래서 아주 슬프시대요. 이럴 때 일수록 이웃인 우리가 아줌마를 위해서 뭔가 해야 한대요. 엄마는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수지는 부끄러워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상처가 났을 때 엄마가 붙여주시던 일회용 반창고가 들려져 있었다. “아줌마 가슴에 난 상처에 이걸 붙이세요. 그러면 금방 나을 거예요.” 

스미스 부인은 어린 수지를 가슴에 끌어안고 한참동안 울다가 “수지야, 네가 준 반창고로 말미암아 아줌마 상처는 곧 낫게 될 거야.” 방으로 들어온 스미스 부인은 유리 벽장 속에 반창고를 놓아두고 반창고를 바라볼 때마다 ‘내 딸은 하나님 곁에 갔지만 내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일도 없지만, 이 땅에 있는 내 딸과 같은 어린 영혼들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그 후 그녀는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세워주고 격려해 주는 일에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어린아이의 위로가 수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위로자를 세워 준 것입니다.

프랜시스의 시의 일부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바나바처럼 상처받은 주위에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을 싸매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하나님의 다리(Bridge)가 되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신앙생활은 다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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