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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기도문의 시대, 나는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가?

기사승인 2019.08.13  22: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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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물질만능주의의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글이 있다. 그 글의 제목은 돈기도문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갑 또는 통장에 계신 돈님이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돈이 판치는 세상이 임하였사오니 소득이 부동산투자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증권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나에게 쓰고도 남을 돈을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고소함같이 나의 진 빚을 잊게 하옵시고 우리를 불황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부도와 파산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자본주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돈님께만 영원히 있사옵니다. 돈 내!’

그렇다. 우리들은 이렇게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인들도 돈을 믿고, 돈에 소망을 두고, 돈을 사랑하고, 돈으로 목회도 다른 모든 것도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돈기도문이 생활 철학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목회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만이 절대기준임을 담대히 선포하며 목회자들 자신이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실 돈이 많다고 교만해지고 우쭐대는 것도 죄이지만, 돈이 없다고 위축되고 열등감에 빠져 사는 것도 죄이다. 성경의 기준은 부함도 가난함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 말씀만이 절대기준이 되어야 한다.

평생 엄청나게 술을 많이 마시고 살았던 크리스천 시인 한 명이 있다. S대학교에 다녔는데 동베를린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어서 갖은 고문과 수모를 당하고 심각한 신체장애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문단에 마지막 남아 있는 순수 시인으로 불려지고 있다. 특히 그의 시에는 정치색이 전혀 없다. 그의 시 ‘귀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이 시인은 살면서 너무나 억울한일, 엄청난 고초를 당했지만 이 세상과 자신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분노, 증오심이 전혀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 인생의 절대기준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의 또 다른 시 ‘행복’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사람이다. (중략)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이 시인이 누구인가?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순수시인 ‘천상병’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교인들을 끌어 모으고 풍족한 사례비를 받으며, 좋은 저택(?)에서 살며 ‘그래 저 목사 목회 성공한 목사야’ 이런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가? 숫자와 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이 목회현장에서 “나는 자립교회에서 장기간 개척 또는 사역하다가 은퇴하게 되었는데 목회하는 내 아들, 사위가 경제적으로 고생하면 안되니까 삼각 또는 교차 교회 대물림하는 일은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거야”하고 스스로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는가?

둘째,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돈에 대한 영적흐름을 따라 살아야 한다.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10절에 보면 ‘부한 자는…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게 되는 물질로 인한 기쁨은 지극히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돈이면 다 된다는 이 시대에 목회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실천모델로 삼으면 된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자신이 물욕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이 물욕을 비웠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자기 자신을 영적인 것으로 가득 채웠다. 나아가서 삭개오는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우상으로 삼았던 돈을 토색한 자들에게는 4배로 갚아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주었다. 삭개오에게는 ‘비움, 채움, 나눔’이라는 경제적인 순환과정이 있었다. 이러한 순환과정, 흐름이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 목회자들, 교회중직자들, 교인들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최근에 인근에서 목회하는 P교단의 선배목사가 나를 쳐다보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박 목사님!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 교회당이 완공됩니다. 그러면 주변의 상가교회, 지하교회, 개척교회들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로 교인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주기도문이 아니라 돈기도문이 떠올랐다. 이러한 돈기도문의 시대 과연 나는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가?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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