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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 (a certain man)

기사승인 2019.07.11  0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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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형 목사(홍성교회)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떠난 요셉이 세겜에서 ‘어떤 사람’(a masn, a certain man KJV.)을 만나 도움 받는다. (창37:12-17) 헤브론 골짜기를 떠나 100여 km가 넘는 세겜 땅에 도착하니 양 치던 형들이 어디론가 이동하고 없는 것이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들을 방황하며 사명을 완수하려던 요셉에게 난데없이 ‘어떤 사람’이 나타나 길을 돕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일생 ‘어떤 사람’(천사)들을 만난다. 동료들에게서 ‘어떤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서울에서 성실히 목회하는 동료가 있다. 출신이 신문 기자이다. 구태여 출신을 말하는 것은 그가 평소에 들레지 않는 냉철한 사람, 과장하기 싫어하고 허튼소리하지 않는 정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를 얼마 전 부산에서 만났다. 목회 정보를 주고받고 하는 중 그가 뜻밖의 간증들을 쏟아 낸다. 어렵게 교회를 개축하기 위하여 주변 건물 지하에 내려가 여러 개월 예배당을 대신할 때이다. 사전 정보 없이는 찾아오기 어려운 지하 예배처에 어떤 모자母子가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묻는 신분을 말하기도 거부하며 예배만 드리곤 하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건축 중도금에 해당하는 거액을 헌금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다시 만날 성 싶은데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종무소식이다. 그들이 ‘어떤 사람’, 곧 천사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역시 기자 출신 그 사모님도 함께 오가는 중 그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내가 감탄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어떤 사람’을 많이 만난다. 나도 그런 ‘어떤 사람’을 수없이 만나고 있다. 또 우리가 그 ‘어떤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연회 총무시절이다. 그해 연회가 폐회 된 지 얼마 안 되어 선교지로 돌아갔던 중년 선교사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귀국했다. 연회본부 내 집무실에서 양해를 구하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그에게 심각한 적신호가 들어온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다른 선교지 필리핀에서 선교사자녀대회(MK선교대회)가 있는데 동원 책임을 맡은 그가 오기 싫어하던 고3 아들을 억지로 데리고 함께 참석시키려고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적신호는 그가 꼭 만나 재정 도움을 받아야 했던 후원 교회 목사가 장기 외유 중인 것이다. 당장 대회장을 오가는 항공기 티켓을 예매해야 하는 데 하나밖에 남지 않은 후원자가 공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교사 출신 다른 동료들에게 전화하며 어렵게 사정을 이야기해보는 모양인데 여의치 못한 것 같다. 그의 금융 카드는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한지 오래이었다. 심각성을 알게 된 내가 무언가 처리해야 할 일들을 위해 내 방과 사무실을 오가다가 내 개인카드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주최 측으로부터 후불로 약속된 여비가 주어지면 갚아달라는 부끄러운 제안과 함께 말이다. 어정쩡한 내게 갑자기 그의 아들, 작은 선교사가 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 남짓 끙끙대는 아버지 옆에서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사춘기의 커다란 아들이 짐짓 마음에 걸린 것이다. 이제야 얼굴을 펴고 안도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아빠 선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커다란 아들을 데리고 나섰다. 대형마트에 가서 청바지를 사 줄 생각이었다. 덤으로 망설이는 그를 종용해서 T셔츠도 고르게 했다. 착한 선교사 부부 자녀답게 착하기만 한 이 작은 선교사의 표정을 보니 그것까지 신세지나 하며 머뭇거렸지만 곧 한 개씩을 들고 기분좋게 마트를 나섰다.

집무실에 돌아와 보니 아빠 선교사는 며칠 내내 그를 번잡스럽게 하던 예매 작업은 마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빌려주었던 결제 카드를 내미는 그에게 그날 저녁 숙소를 물으니 아직 구상중이란다. 게스트하우스마저도 그날은 사용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마침 내 아내가 친정에 들러 집이 비어 있었다. 아내 허락도 없이 우리 집에 부자를 데리고 가서 밥을 지어 먹였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갑자기 아들 선교사가 또 내 마음에 들어온다. 어린 것이 애써 표정 없이 여러 날을 지나며 울분과 실망을 삼키며 얼마나 울부짖고 있었을까? 선교사인 자기 가족의 딱한 현실에 얼마나 분노와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 마음이 저려온 것이다. 그 무표정하고 태연한 척 하는 얼굴이 또 나로 엉뚱한 생각을 가지게 한 것이다. “너 영화 보러 갈래?” 갑작스런 내 제안에 아버지 선교사가 얼른 대답을 가로챈다.  “좋지요. 사실은 얘를 고국에 내가 데리고 나오면서 두 가지를 약속했어요. 하나는 청바지이고 또 하나는 한국에서 최근 개봉했다는 공상과학영화 ‘◌◌◌Ⅱ’를 보여준다는 것이었어요.”  “···”

주님이 우리에게 가끔 붙여주시는 ‘어떤 사람’들이 천사들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하겠지만 또 우리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어줘야 하리라.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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