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존 웨슬리의 강조점과 일치하는 현대 복음주의 운동

기사승인 2019.07.03  00:44:15

공유
default_news_ad2

- 임성모 목사(감신대 조직신학 강사, 강화 은혜교회)

이 글은 지난달 20일 한국복음주의영성협회에서 강의한 내용을 본지의 요청에 따라 임성모 교수가 요약 정리해 보내온 것입니다.<편집자주>

 

‘복음주의 영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 ‘복음주의’와 ‘영성’의 개념을 차례로 설명하겠다. 그런 다음 복음주의 영성의 핵심인 웨슬리 영성을 다루겠다. 

1. 복음주의
복음주의 개념에 대한 다양한 오해가 있다. 신학적 경향과 상관없이 개신교를 통틀어 복음주의라고 부르기도 하고, 근본주의를 복음주의와 혼동하기도 한다. 혹자는 신앙 체험이 분명하다며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20세기 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졌던 신학적이고 실천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를 지칭한다.
복음주의는 한때 학문적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미로슬라브 볼프, 케빈 밴후저, 알리스터 맥그래스, 제임스 패커, 도널드 블러쉬(작고), 스탠리 그렌츠(작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학자들이 복음주의 진영에 포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를 동일시하는 오해가 상존한다. 이 때문에 복음주의는 신학이 없거나 약하다는 선입견을 갖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복음주의의 둥지라고 볼 수 있는 근본주의는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주로 미국에서 맹렬하게 타올랐던 근본주의 운동은 진화론과 같은 세속 학문, 계몽주의 영향권 아래 발생한 독일 자유주의 신학, 가톨릭 이민자 급증 등을 교회 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보수적 지도자들은 근본주의를 통해 신앙의 근본을 확고하게 사수하려고 하는 방어적 자세를 취했다.
1910년 미 북장로교 총회에서 의결한 5가지 근본적 신앙의 교리는 △성경 무오설(biblical inerrancy)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the virgin birth) △그리스도의 대속(substitutionary atonement)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the bodily resurrection) △그리스도의 기적들(the miracles of Christ)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 1910년부터 1915년까지 「근본주의 교리」(The fundamentals)라는 소책자를 대대적으로 배포했다. ‘그리스도의 기적들’ 대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근본주의 신학자들은 프린스턴 신학교와 분리해 1927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 한국에서는 박형룡 교수가 존 그레샴 메이천에게 근본주의 신학을 배웠고 그가 신학적 뼈대를 세운 총신이 근본주의 신학의 맥을 잇고 있다.

교회가 세상의 급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신앙의 정수를 지키려고 했던 근본주의자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성서 무오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여성 안수 반대의 경우처럼 억압적 성서 해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세속 문화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창조 세계를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 역사 안에서 교회의 책임은 무엇인지와 같은 ‘교회와 세계와의 관계 설정’이 그들 신학에서 취약하다.

복음주의(또는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의 자식이다. 복음과 성경의 권위를 사수하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전적으로 충성하는 자녀가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자녀다. 문화에 대한 감각과 활용, 사회정의에 대한 감각과 실천, 성서에 대한 영성적이며 학구적 접근 등에서 근본주의와 결이 다르다. 존 스토트와 빌리 그래함이 주도한 1974년 로잔회의의 결과물인 ‘로잔 언약’은 복음적 신앙과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양자를 균형 있게 강조한다.

복음주의는 성서와 신앙의 언어를 강조하기에 교회에 적합한 신학이다. 복음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에 따르면 복음주의의 여섯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원천이자 그리스도인 삶의 지침으로서 성경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권위. 둘째,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자 주님이시며 죄인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 셋째, 성령의 주되심. 넷째, 인격적 회심의 필요성. 다섯째, 그리스도인 각자와 교회 전체를 향한 복음전도의 우선성. 여섯째, 영적 양육, 친교, 성장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여기서 우리는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지배적 특징이 존 웨슬리의 강조점과 일치한다는 점을 눈치 채게 된다. 사실 존 웨슬리와 조지 휘필드는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출발점이다(독일 경건주의 운동, 조나단 에드워즈 등을 추가하기도 한다).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 (homo unius libri)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신성을 흔들릴 수 없는 중요 교리로 가르쳤고, 회심과 전도 그리고 제자를 세우기 위한 헌신적 삶을 살았다. 평신도의 변화된 삶과 사회적 책임도 중시했다.
한국감리교회는 게렛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정경옥 교수 이래 ‘신앙은 복음적/신학은 자유주의’ 또는 ‘교단은 복음적/신학교는 자유주의’라는 기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성경 복음 회심 전도 제자화를 강조했던 존 웨슬리는 한국 목회자들에게 살아있는 전범典範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웨슬리의 삶과 신학을 자기 입맛에 맞게 과격하게 비틀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2. 영성
많은 이가 영성(spirituality)을 오해한다. 영력, 신비주의, 직통계시, 자연주의, 우주와의 합일 등을 기독교 영성인 줄 안다. 제임스 휴스턴에 따르면, 영성이란 “하나님과 깊은 관계 가운데 있는 상태”(the state of deep relationship to God)다. 즉 말씀, 예배, 기도, 친교, 섬김 등을 통해 신자가 점점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하여 가고, 성령 안에서 변화 받고,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신학적으로 ‘성서 존중’과 ‘교리’가 약한 한국감리교회는 현재 가톨릭 영성과 포스트모던 영성에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중세기 신비주의와 수도원 영성에 주목하고, 명상 관상 등을 가장 좋은 기도 방식인 것 같이 가르치기도 한다. 창조 영성, 범신론적 영성, 타종교에서 배우는 영성 등도 일각에서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이다.

그러나 개신교 영성은 일차적으로 ‘말씀의 영성’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 개신교의 장점이고 영성의 핵이다. 굳이 개신교 영성을 종교개혁 이전과 연결시키자면 3세기 오리겐(Origen)으로부터 시작한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읽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 낫다. 그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상하는 방법이다.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개신교 성경 읽기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영성을 더 풍성하게 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웨슬리안 복음주의 영성
복음주의와 영성에 관한 위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웨슬리안 영성을 글쓴이의 시각으로 분석 제시하겠다.
첫째, 성서적 영성이다. 알버트 아우틀러가 정리한 4변형(성서, 전통, 이성, 경험)은 오해되기 쉽다. 웨슬리에게는 4가지가 같은 무게의 권위를 갖지 않는다. 전통 경험 이성은 신앙과 신학의 권위가 아니다. 그것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일 뿐이다. 최종 권위는 성서다. 이런 정확한 이해가 없기에 감리교회 목회자들에게 성서 존중, 성서적 설교, 성서 공부가 약하다. 크게 반성할 점이다.
둘째, 순례자적 영성이다. 웨슬리의 ‘구원의 질서’(ordo salutis)는 회개 칭의 성화 영화로 이어진다. 신앙생활이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구원 받은 자는 구원의 길을 걸어간다. 은혜 받은 이는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신자 됨과 신자 되어감이 동시에 강조된다. 성화가 따르지 않는 칭의나, 칭의 없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셋째, 성만찬적 영성이다. 현재 감리교회가 이것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 웨슬리는 신자들에게 반드시 주일 성만찬에 참여하라고 강조했다. 감리교회가 감리교회다우려면 반드시 이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
넷째, 공동체적 영성이다. 웨슬리는 사회적 거룩(social holiness)을 강조했다. 성도의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자라간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신자는 속회(class), 반회(band), 신도회(society)에 참여해야 했다.
다섯째,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을 활용하는 영성이다. 한번 은혜로 영적인 거장이 되지 않는다. 계속 은혜를 받기 위해 사모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 성경 읽기, 성만찬 참여, 금식, 친교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은혜를 사모하고 받아야 한다.
여섯째, 성육신적 영성이다. 은혜 받은 이는 사회 속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긍휼이 나타나야 한다. 

신사도 운동, 신비주의, 직통 계시 등은 감리교회 전통이 아니다. 복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서 웨슬리는 성서에 바탕을 두고, 예배를 중시하고 공동체적이고, 실천적인 영성을 중시했다. 글쓴이는 교회사에 나타난 다양한 영성의 흐름 가운데 웨슬리안 복음주의적 영성이 가장 성서적이고 통전적인 영성이라고 여기고 있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일반기사

문화

1 2 3 4
item53

교육

1 2 3 4
item54

미션

1 2 3 4
item55

오피니언

More Section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