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하디의 고향을 찾아서 (下)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기사승인 2019.07.03  00:41:52

공유
default_news_ad2

- 장이려 목사(속회연구원 상임연구실장)

비전펠로우십 센터에서 설명을 듣는 일행.

하디의 고향 탐방을 준비하면서, 찾아갈 장소와 그곳에 대한 정보 그리고 고향에서의 하디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것은 2013년 하디성회 자료집과 학술대회 자료, kmc 출판 「소설 하디」, 신앙과지성사 출판 「로버트 하디 불꽃의 사람」 그리고 이덕주 교수님이 박동찬 목사님과 함께 대한항공에서 주최한 하디 관련 팸투어를 2016년 다녀오며 기독교타임즈에 기고했던 기사 정도이다. 그 기사를 통해 팸투어를 기획 진행한 강사겸 부장(대한항공)을 찾아 만나면서 우리가 원하는 일정과 내용을 만들어갔고, 여행사 채움(대표 이규성), 안내자 유영식 교수님 그리고 박해일 목사님의 도움을 받으며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어갔다.

이번 탐방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은 하디가 한국 선교사로 나오기 전까지의 내용과 5번에 걸친 안식기간 그리고 은퇴 후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준비하며 당황스러웠다. 탐방할 곳이 너무 적고 단순한데다 정보까지 부족하거니와 찾은 자료도 때로는 검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전 펠로우십 센터 (Vision Fellow-ship ; 2 Twenty Sixth St, Etobicoke, ON M8W 1R6 캐나다)

토론토에서 하디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탐방한 장소는 비전 펠로우십 센터이다. 이곳은 내한 캐나다 선교사가 약 200여명이 되는데, 그들 중 하디를 비롯해 182명의 자료를 모아 정리해 둔 곳으로, 평신도선교사인 최선수장로님이 만드셨다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세계에서 가장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인데, 우리는 어느 나라에, 어떤 특성을 가진 선교사님들을, 얼마나 많이 파송하고 있으며, 또한 그분들이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하디나 에비슨과 같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을까? 혹시 그런 분들을 우리는 지금의 캐나다 사람들처럼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 선교 배경과 파송 지역 그리고 선교사님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가운데, 최초의 내한 캐나다 선교사는 장로교 선교사인 게일인데, 게일이 조선 선교를 가게 된 것은 미국 감리교회 목사인 가우처의 영향으로 이루어졌으며, 감리교 선교사인 하디는 장로교 선교사인 게일의 권유로 조선에 오게 됐다 한다. 이 설명을 들으며 사람은 아볼로파냐 게바파냐 하는 등 외모를 보고 중시하지만, 중심을 보시며 심고 물을 주는 사람을 선택하고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고 회개하며 감사했다.

하디의 묘 (4108 Old Lansing Rd, Lansing, MI 48917 미국)

토요일 아침 우리는 약 6시간에 걸쳐 미국 국경을 넘어 미시간 랜싱, 하디가 묻혀있는 묘지를 방문했다.
사실 이 탐방 여정을 계획하면서 하디 묘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방문 여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하디의 묘도 방문해야 한다며 묘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고, 지난 가을 아내의 도움으로 이곳 주소를 찾아냈다. 이후 대한항공 강사겸 부장님이 이곳에 답사를 와 확인하면서, 오늘 우리가 이 장소에 올 수 있게 됐다. 참 뿌듯하고 감사하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동안 폭우가 쏟아졌다. 버스 안에서 참 많은 걱정을 하며 기도했다. 많은 비가 오는 가운데 일정을 진행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더더욱 촬영과 인터뷰는 문제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가 그칠 것이라는 자그마한 믿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토론토 지역을 탐방하는 기간 내내 일기예보는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밤에 비가 오고 낮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든지, 우리가 버스를 타면 비가 오고 내리기 직전에 비가 그쳤을 뿐만 아니라 날씨가 화창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오늘도 그러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도착하기 직전 비가 언제 왔냐는 듯 그치고, 햇살이 따스하고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자연은 그 푸르름이 충만하고, 땅도 단지 촉촉함을 머금고 있을 뿐 조금도 질척하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의한 자연의 극치의 환대였다. 이에 대해 감사하며 버스에서 내렸지만, 하디의 묘로 향하는 모두의 발걸음은 약속이나 한 듯 무거워 보였다. 왜일까?

우리는 하디와 하디의 부인 그리고 그의 딸이 나란히 묻혀있는 묘 앞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인지 묘비 위에 쓸려온 잔디가 이름을 조금 덮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허리를 굽혀 잔디를 닦아내고, 예배를 드리고, 헌화를 하며 깊이 감사했다. 또한 오늘의 우리들과 우리들의 교회들에게 제2, 제3의 하디가 필요치 않은, 우리들의 모습과 후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묘비는 하디와 하디의 부인 그리고 그의 딸의 것이 나란히 있다. 정면을 바라보며 오른쪽부터 ‘Father(1865-1949) Robert A. Hardie’, ‘Mother(1862-1946) Margaret M. Hardie’, ‘Daughter(1890-1974) A. Elizabeth Hardie’. ‘Father’, ‘Mather’이라고 쓰여진 것을 보니 하디부부의 묘는 딸 Elizabeth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을 것 같다. 하지만 ‘Elizabeth’의 묘는 누가 만들었을까? 남편이? 자녀들이? 그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하디는 왜 그의 고향이 아닌 이곳에서 그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보냈을까? 잘 모르긴 하지만, 미국인들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사는 것을 별로 원치 않을 뿐만 아니라 좋게 보지도 않는다는데 왜 하디가 딸의 집에서? 아니면 근처에서 살았을까? 후에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들은 가족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고, 또 가능한 그렇게 모여 산다고 한다. 젊어서 헤어져 사는 것은 일자리 때문이지, 같이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왜 하디가 랜싱에서 딸과 말년을 같이 보냈는지 이해가 됐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하디의 고향을 찾아 다녀온 이 길은 나에게 참 감동적이고 진한 여운 그리고 아쉬움을 남기는 여정이었다. 이렇게 귀한 여정을 우리만 다녀온 것이 아쉽고,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질문을 풀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하디의 유적지가 잘 연구, 발굴, 보존 그리고 나눠지고 있지 않음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여정을 누군가 이어가고, 감리교인 이라면 특별히 감리교회 지도자라면 이곳을 꼭 탐방하면 좋겠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된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자신이 후손들에게도 감사의 본이 될 수 있고, 또한 그들에게 “너희도 너희의 후손들에게 축복의 통로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리고 쉽고 가벼운 이 글보다 사실적 무게감과 깊이 그리고 재미를 더한 참 좋은 글들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이 여정을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여정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함께 만들어 주신 이사장이신 박용호 목사님 내외분, 원장이신 서길원 목사님과 딸 서예은전도사님, 이철 목사님 내외분, 김성태목사님 내외분, 송섭pd 목사님, 현장에서 안내해 주신 유영식 교수님, 박해일 목사님, 속회연구원 모든 이사분들 그리고 이 글을 내자고 제안해 주신 기독교타임즈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디의 묘비 전경.
하디부부 묘지 앞에서.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일반기사

문화

1 2 3 4
item53

교육

1 2 3 4
item54

미션

1 2 3 4
item55

오피니언

More Section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