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Hamlet」 햄릿 거기 누구냐? ④

기사승인 2019.05.01  01:56:36

공유
default_news_ad2

- 송영범 목사(갈릴리교회)

루쉰은 「아Q정전」에서 애초부터 길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걸어갈 때 길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길로 들어서려는 개인이 행렬을 본다는 건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무척 유리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길이 보이기 때문에 선택이 한결 수월해질 거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길이 넓을수록, 길로 들어서는 이들이 많을수록 의문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7:13)

블레이즈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정의하길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17세기 프랑스를 살았던 파스칼을 생각하면 그의 말은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고통을 가장 많이 안고 살아간 한 사람, 햄릿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뇌, 너무나 인간적인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덴마크를 혼란과 부패가 만연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햄릿의 아버지는 선왕으로 백성들의 진심어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햄릿」 뿐만 아니라 비극 대부분이 그렇지만 ‘악’은 대상이 있을 때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햄릿의 아버지인 선왕의 존재로 인해 덴마크는 나라의 부패성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선왕의 자질을 갖춘 햄릿을 기대했습니다.

「햄릿」의 시작은 공포를 자아냅니다. 클로디오스가 자신의 형이자 덴마크의 왕을 독살했습니다. 동생의 손에 죽게 된 왕은 자신의 아들 햄릿에게 나타나 사건의 전말을 밝힌 채 사라졌습니다. 선왕은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햄릿의 갈등요인이 과연 무엇인가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수를 지연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들도 햄릿에게 있었습니다. 「햄릿」에 이 둘은 치열하게 대립하게 됩니다. 「햄릿」이란 작품을 말할 때 많은 경우 햄릿의 우유부단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햄릿의 우유부단함 이전에 혼령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햄릿에게는 엄청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혼령이 전한 메시지 진위여부를 떠나 종교개혁 시대에 혼령과 싸워야 했던 햄릿은 고민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놀랍도록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래서 르네상스시대의 위엄을 그대로 간직한 젊은이가 반종교적이며 미신적인 혼령과의 만남 끝에 운명을 걸어야했던 이야기가 「햄릿」입니다. 계절을 벼리던 여름날, 소스라치게 놀란 대지가 토해낸 신기루 위를 걸어가던 사람이 바로 햄릿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토록 유명한 햄릿의 독백을 만나게 됩니다.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숭고한 정신인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처럼 몰려오는 많은 고난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일까. 죽는 것은 잠자는 것, 그 뿐이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일반기사

문화

1 2 3 4
item53

교육

1 2 3 4
item54

미션

1 2 3 4
item55

오피니언

More Section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