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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건너가야 한다

기사승인 2019.05.01  01: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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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식 목사(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광화문 일대는 주말이 되면 도떼기시장이 된다. 세월호 천막이 있던 자리에 ‘기억과 빛’이라는 이름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차분하게 자리를 잡아 이제는 광화문 광장이 어떤 모습으로든 제자리를 찾겠거니 했던 생각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다. 태극기 무리도 하나 둘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심지어는 앞뒤에서 제각기 자리를 잡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고, 다른 목소리를 가진 무리도 여러 곳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목청을 높여 전하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들도 동원되어 ‘장외투쟁’이란 이름으로 집회를 열고 있다. 정치광장이 되어버린 듯하다. 태극기도 촛불도 아닌, 순전히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천막을 치고, 현수막을 걸어놓고, 확성기로 자신들의 사정을 알리는 무리도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떼’가 모여 무시無時로 상시常時로 ‘떼’를 쓰는 ‘떼 마당’이 되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어느 토요일 뭇 소리들을 피하고 싶어, 고등학교 선배인 정태춘과 부인인 박은옥의 데뷔 40주년 기념전 <다시, 건너간다>를 관람하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층 전시관에 들어섰다. 1978년 기숙사 모퉁이 방 야외전축의 스피커에서 만난 그의 노래 ‘시인의 마을’은 그를 가수라기보다는 고민이 많은 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는데, 1992년에 다시 만난 그의 노래는 확 바뀌어 있었다.

1987년부터 정태춘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노래를 발표하면서 사회·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그가 개입하고 활동한 굵직한 사건은 ‘전교조 사수 투쟁’을 위한 노래극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 공연과 ‘음반 사전 심의제 철폐운동’ 그리고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운동’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아, 대한민국> 음반 발매를 시작으로 하여 그가 주도하여 이뤄낸 ‘음반 사전 심의제 철폐’는 한국 음악사, 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대사건이자, 한국 대중 문화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었다. 한 인터넷 인물 소개 사이트는 1988년부터의 그의 음악활동을 “새 노래를 들고 광야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번 40주년 기념전의 제목인 <다시, 건너간다>는 98년에 발표한 곡 ‘건너간다’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 가수이며 시인이자 사회·문화운동가인 그가 건너가고자 했던 것은 “환멸의 90년대”와 “천박한 한 시대”이며, “휘청거리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노쇠한 한강”을 건너가는 “고단한 세기”이다. 환멸의 90년대와 고단한 세기를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정치는 천성이 수줍은 데다 평범하고 싶어 했던 서정성 짙은 가수를 정치적 활동가로, 광야로 내몰았다.

광화문 광장 남서쪽 모퉁이에 근엄하게 자리 잡은 감리회 본부 건물에서도 무시無時, 상시 常時로 정치활동이 벌어진다. 세상 정치와 다르다 해서 흔히 교회정치, 교권정치라 부르는 모양인데 이권과 이익을 놓고 벌어지는 행태는 세상정치의 뺨을 넉넉히 후려치고도 남는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아니 더 비열하고 추잡하다. 일제 치하 우리 감리교회가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항거했던 역사도 분명 정치활동이다. 그러나 그 정치활동의 방향과 목적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통치’의 그늘이라도 맛보고자 했던 신앙 일념에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시작된 갈등과 분열, 그리고 한국 전쟁 후에 벌어진 교권 다툼과 파벌派閥·파쟁派爭은 교권정치를 낳았고, 그 정치의 정점頂點과 종점終點은 광화문 본부 건물에 입성하는 길로 귀착되었다. 그래서 가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본다. 저 본부를 정치광장인 광화문에서 끌어내어 모든 부서를 각 연회로 옮겨 놓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완연한 봄이다. 교권정치를 버리고 세상정치를 건너가야, 노쇠한 감리교회를 다시 일으키고 감리교도들을 영적으로 고단한 세월에서 살릴 길이 열릴 텐데. 날이 기온만 높아졌지, 생명과 성령의 기운은 아직도 영하零下에 밑도는듯하여 광화문의 날씨는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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