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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기쁨을 맛보며 사는 그리스도인

기사승인 2019.05.01  01: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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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현 목사(은진교회)

현대를 레저 혁명(Leisure revolu-tion)의 시대라고 말한다.

공리주의자 벤담은 쾌락은 선이고 고통은 악이라고 하면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벤담의 사상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에 따르면 사람에게 선은 쾌락이고 악은 고통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자신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윤리적으로 바르지 못한 행동 속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혹은 쾌락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벤담은 최대 다수의 사람들이 최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즐거움을 추구한다. 행복감도 즐거움이 만족한 정도에 이를 때 느낄 수 있는 정서이기 때문에 즐거움은 행복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고 힘을 주는 존재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기초이다.

즐거움에는 복락도 있고 쾌락도 있다. 복락과 쾌락을 구분하는 특별한 정의는 없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복락福樂은 행복과 안락이라고 한다. 안락安樂은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락은 몸과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운 중에 누리는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쾌락快樂의 사전적 의미는 기분이 좋고 즐거운 느낌을 말하고, 심리학적으로는 감성感性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이라고 말한다.

벤담은 인간은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것이 더 고상하고 어느 것이 저급한 즐거움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양적 공리주의자 벤담을 이어받은 질적 공리주의자 J.S.Mill(1806-1873)은 양적으로 더 많은 쾌락을 얻는 것이 행복의 증가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쾌락에도 질적으로 더 높은 인간의 쾌락과 질적으로 낮은 동물의 쾌락이 있다고 했다. 양적으로 더 많은 쾌락을 누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Mill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최근에 일부 재벌가 자녀들과 유명 연예인들이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일부 상위계층 사람들이 마약과 성적 일탈이 주는 쾌락에 취해서 한 행동들은 J.S. Mill이 말한 것처럼 질적으로 낮은 동물적 쾌락이고,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즐기는 질 낮은 쾌락인데, 이는 개인과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지배욕과 같은 육체적 감각의 만족을 추구하는 동물적 쾌락에 탐닉하는 것은 재난처럼 개인과 사회에 엄청난 생채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고상한 것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상한 기쁨 즉 복락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의미 있는 만남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남은 우리 몸과 영혼에 정서를 흔적으로 남긴다. 좋은 만남은 사랑이나 감사와 기쁨 같은 긍정적인 정서를 남기고, 나쁜 만남은 불만이나 원망, 미움, 시기, 질투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남긴다. 좋으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좋은 만남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정서를 남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질 높은 즐거움이고, 사랑이 담긴 즐거움으로써 복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질적으로 높은 쾌락 즉 복락을 추구해야 한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참된 신앙은 주로 거룩한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신앙감정론)고 말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우리의 몸과 영혼에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감정을 유발한다.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몸을 갖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 가운데서 기쁨으로 찬양을 부른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갖는 영적인 즐거움 때문이다. 몸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영으로 느끼는 기쁨과 사랑은 우리의 몸을 통해 표출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하게 행복을 증가시키기 위해 동물적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영혼과 육체가 함께 즐거운 것과 감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다운 품위를 갖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과 몸이 참된 즐거움과 감사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삶이 대단하지 않은 하루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만남이 주는 거룩한 감정 속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좋겠다.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자. 그리고 하나님이 주는 기쁨을 맛보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매일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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