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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대한 영성학적 이해(1) 인간존재의 중심으로서의 마음

기사승인 2019.04.10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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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천 교수(협성대학교 기독교영성학)

우울증,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자살충동 등 우리 사회는 갈수록 마음이 힘들어 지는 사회가 되는 것 같다.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며 앞으로 몇 주간 그 마음에 대한 영성학적 의미와 훈련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사랑에서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요구하시는데 그러한 신적 기대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사랑을 느끼고, 사랑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마음은 인간이 자신의 이기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마음의 상태에 따라 우리가 이기적인 존재로서 기쁨이 충만하지 못한 삶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이타적인 존재로서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삶을 강조하는 포도나무 비유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1)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면, 타자를 위한 삶을 살아 내면의 기쁨이 충만하셨던 예수님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다. 바로 마음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느끼고, 그리고 그 사랑이 생기는 곳이기에 마음은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은 인간 존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영성학적으로 인간 존재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마음은 성령이 임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6-17)

16절의 속사람을 영어 성경은 ‘inner being’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곧 17절의 ‘마음’과 같은 개념이다. 기독교적 진리의 위대함 중 하나는 아들을 보내 죄인들을 구원하신 성부가 신자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이 없이는 이타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인간의 속성을 아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 아버지께 요청하여 성령을 보내 줄 것을 약속하셨다. 그 성령은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처럼 이제 신자들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요한복음 13-17장의 가르침은 예수님이 오직 제자들만을 위해 하신 마지막 사역이었다.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이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장에서는 세족식을 하셨다. 14장에서는 성령이 오실 것을 말씀하셨다. 15장에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셨다. 16장에서는 장차 오시는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말씀하셨다. 끝으로 17장에서는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셨다.

그런데 15장에서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먼저 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고 하셨을 때 ‘거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동사는 ‘메노’(μενω)다. 이 ‘메노’와 같은 어근을 가진 동사가 14장 17절에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는 구절에서 사용된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의 초대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할 것이라는 이 두 구절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해서 오셨고, 마지막으로 그 사랑 가운데 머물라고 간곡히 유언처럼 말씀하셨어도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제자들이 순종하지 못할 것을 아셨을 것이다. 그래서 15장보다 먼저 14장에서 그 제자들의 연약함을 도와줄 성령을 보내 줄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2)

여기서 ‘그날’이란 오순절에 성령이 집단적으로 임한 그날을 말한다. 즉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을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도우시는 성령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실현 가능하지 않던 이타적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이웃 사랑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not from me)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나서 표현되는 사랑(but through me)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고 하였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잘못해서 중심을 잃고 철로 위에 떨어진 노인을 구해 주다가 부상을 당했다면 그것은 분명 사랑이다. 숭고한 인간애로 정부에서 모범시민 표창을 주어야 한다. 그것도 사랑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렇듯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 임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임한 성령으로 인해 그 성령의 첫 열매인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신적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열려 있다.

거룩한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이번 한주 우리 주변의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싶다. ‘헬 조선’이라고 부르는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성령이 임한 우리의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해 보기로 다짐하는 한 주가 되면 어떨까?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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