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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가 말하는 영성학적 완전의 개념 요약

기사승인 2019.01.30  00: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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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천 교수(협성대 기독교영성학)

지난 몇 주 동안 그레고리가 말한 완전의 개념을 살펴 보았는데 그것을 정리해 보자. 그레고리에게 완전의 개념은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완전이란 덕의 원천인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되는 것이며 그러한 신자는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완전에의 길에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상태에 이르렀다. 「모세의 생애」 결론에서 그레고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세가 성취 가능했던 완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하여 더 진실한 증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너를 더 알아 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린 사실이 그것을 보여 준다. … 그러한 모든 일들은 모세의 생애가 완전의 최정상에 이르렀다는 명백한 증언이자 증거다.”

여기서 ‘모세가 성취 가능했던 완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두 가지 구절을 살펴 보아야 하는데 ‘완전에 이르렀다’를 나타내는 말과 ‘성취 가능했던 완전’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먼저 헬라어로 3인칭, 단수, 과거, 직설법으로 쓰여진 ‘완전에 이르렀다’는 말은 모세가 확실하게 완전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적인 기준의 완전이다. 절대적인 의미의 완전이 아니다.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정상에 도달한 또 다른 증거를 우리는 민수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민수기 12장 3절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완전에 이르는 것은 그 과정이 중요한데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모세의 생애」의 서론에서 그레고리는 그 길을 말 경주에 비유하여 묘사한다. 말 경기장에서 관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자신이 승리를 기원하는 말을 향하여 열정적으로 응원한다. 비록 자신의 몸짓과 목소리가 최선을 다해 달리는 그 말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레고리는 바로 자신이 그 관중과 같은 태도로 자신에게 「모세의 생애」이라는 책을 써줄 것을 요청한 젊은이를 향해 그의 영적 달리기를 응원한다고 강조한다. 「모세의 생애」 끝부분에서 그레고리는 다음과 같이 거듭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론에서 우리의 정의를 잊지 말자. 거기에서 우리는 완전한 삶에 대한 묘사가 어렵다고 해서 그것의 진보를 방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더 나은 것을 향한 삶의 지속적인 성장이 완전을 향한 영혼의 길이 되는 것이다.”

그레고리는 여기에서 지속적인 진보의 개념을 통하여 완전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완전을 덕의 정적인 성취 개념(static achievement of virtue)으로 이해한 헬라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동적인 성취 개념(perpetual progress)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영성학자들은 완전에 대한 이러한 개념이 그레고리에 의해 신학적으로 정착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동방정교회의 영성신학에 영향을 받은 존 웨슬리의 완전에 대한 개념과 유사한 점이다.

셋째, 완전에 대한 또 다른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론적 측면에서 설명된다. 「모세의 생애」에서 하나님은 영적 성장의 초보자에게는 빛 가운데에서 계시되는 반면, 진보자에게는 어둠 가운데 알려진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드러남과 감추어짐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신 하나님은 떨기나무의 불 가운데 계시된다. 여기에서 불이 암시하는 것은 구체적인 드러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의아해하는 모세에게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구체적인 관계를 통하여 알리신다. 나아가 하나님은 자신의 신적 본질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명백히 드러내신다. 이와는 다르게 영적 진보의 정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암흑 가운데서 나타나신다. 빛 가운데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나 어두움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감추어진다. 이것은 모세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전이해들을 부정해야 함을 상징한다. 영적 진보자는 과거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뒤로하고 다만 어둠과 침묵 가운데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신적 계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넷째, 완전을 향한 개인의 진보는 진보한 만큼 공동체에 유익을 주게 된다. 완전의 덕은 개인을 위한 목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레고리는 「모세의 생애」의 결론의 마지막 장에서 「모세의 생애」를 서술해 줄 것을 요청한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이제 자네의 이해가 장엄하고 신적인 것으로 고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나는 자네가 많은 것들을 발견하였을 것이라고 확신하네. 무엇을 발견하였든지 가장 확실한 것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의 유익이 될 것이라는 것이네. 아멘.”

그렇다! 우리가 가고 있는 완전의 덕을 향한 경주는 곧 이웃을 향한 달음질이다. 이러한 사실은 동방정교회 영성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던 숯불에 달구어진 쇠의 비유에서도 잘 표현된다. 쇠는 그 자체로서 차갑고 무거우며 날카로울 수 있어 자칫 다른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그러나 숯불에 달구어지면 빛과 열이 된다. 어두운 곳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고 추운 곳을 따뜻하게 해주는 열이 되는 것이다. 불이 되어 버린 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쇠다. 그러나 불이 된 쇠는 자신의 본질과 관계없이 자신이 가는 곳마다 빛과 열을 나누어 준다. 다른 존재로 기능하는 것이다. 차가운 쇠가 열을 받아 불이 되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물러 이타적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충분히 머물렀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성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벌써 1월이 지나가고 있다. 새 달을 맞는 이번 한 주도 영적 달리기를 지속하여 우리가 불이 된 만큼 우리 주위를 따뜻하고 밝게 비춰 보기를 다짐하는 한 주가 되면 어떨까?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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