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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양심대로 살 순 없을까

기사승인 2019.01.10  14: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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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범세 장로(숭의교회 원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 순 없을까?
선善한 양심을 지키는 살기 좋은 사회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이성理性과 양심良心, 자유의지自由意志라는 고귀한 자아自我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존귀한 창조물이라는 증표이다.

그런데 우주만물을 정복하고 잘 다스리며 살라했는데도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너는 과연 이성적이며 양심에 거리낌 없이 또 법을 잘 지키며 바르게 살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아무도 자유롭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부터도 거룩한 척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위선자로 행동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게 인간으로서의 고민거리요 한계이다.

 양심良心의 사전적 정의는 “선善을 행하고 악惡을 피하려고 적절한 때에 인간에게 명령하는 이성理性의 판단으로 바른 말  바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경에서도 “양심은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이다”(로마서2:15).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고 밝히 말씀하셨다. 

우리 헌법도 제 19조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나할 것 없이 좋은 양심을 저버리므로 사회적 병리현상社會的 病理現象은 만연되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에서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한 조각의 빵을 훔치다가 20여년의 징역살이를 한다. 예수님을 따르던 가롯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그를 죽였다. 연산군은 생모의 원수를 깊겠다고 신하를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흥청망청 부녀자를 농락하였다. 이완용은 이 나라를 자기 것인 양, 민족의 양심을 짓밟고 일본에 팔아넘겼다.  

현실사회를 보자. 일자리가 없어 생계에 위협을 받자 차라리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도 있는가하면 의식주 생활 안정을 위해, 입신출세를 위해 무분별하게 사기, 강·절도, 살인을 일삼는 사건이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일일이 거명할 수는 없지만 정치권을 보아도 객관성, 합법적, 합리적 판단보다는 잘못된 점임을 뻔히 알면서도 상대를 비난·비방하는 일을 보게 된다. 

사법부 재판에서도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함에도 감정적으로 억울하게 재판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국민들의 시각이다. 생존경쟁의 생태계 속에서 영적전쟁터에서 다 예상되는 사례이다.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것도 죄라는데 무슨 행동인들 자기 좋은 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심을 아신다.

사람의 사사로운 말이라도 하나님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으시고 캄캄한 방에서 은밀하게  속삭이는 음모의 소리도 전등을 켜놓고 훤히 보고 계신다.(人生私語 天聽若雷 暗室欺心神目如電) 신독愼獨이라 혼자 있을 때이라도 오히려 양심에 거리낌 없이 언행을 삼간다는 성현의 말이 있다. 양심은 못 속인다.

지금은 CCTV시대라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다 살핀다. 죄 짓고는 못 산다. 죄를 지으면 피할 길이 없다 죄를 짓고도 편한 잠을 잔다면 그야말로 파렴치범이다.

죄를 지으면 양심의 고동소리가 울린다. 두근두근 가슴이 저절로 뛴다. 경고음이 들린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다. 죄책감에 시달려 편안한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양심적 생활인은 불안 공포가 없고 떳떳하여 자존감과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 평화, 기쁨, 행복이 깃든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적정 수준의  의식주衣食住가 해결되고 자아실현自我實現할 일터가 주워진다면 이로 자족自足하며 죄짓지 않고 살수 있다고 본다. “더도 덜도 말고 죄  짓지 않게만 욕구를 충족해 주세요.” 이게 신앙이의 기도이며 바른 인생관이 아닐까. 현명한 사람은 양심에 귀 기울일 때에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로 듣고 자기의 존재 위치를 자각한다. 양심에 화인火印맞은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사리事理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에게 곧잘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 말한다. 사회법 이전에 양심의 법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성理性이 종합적 사리판단능력이라면 양심은 인간의 밝은 빛이요, 정신문명의 원동력이다. 양심과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생명양식이다.

양심은 우리의 잘못을 고발하고 채찍질하고 심판하고 가책하기 때문에 양심을 지키면 사회법도 지키게 되어 탈 많은 죄를 짓지 않고 올곧게 산다. 그래도 건전하게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간에게 이성과 양심을 빼버리면 동물과 다를 게 없다. 무법천지가 된다. 인간미가 없는 사악한 사회가 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비인간이 된다. 양심의 소리는 준엄하고 그 판단은 공정하다.

양심이 마비된 사람은 죄짓기를 멈추지 않는다. 회개도 없다. 그런 이를 하나님은 묵과하지 않으리라. 그런 이들의 삶은 결국 불행하고, 악인이 된다. 이미 인간다움이 사라진 존재로 사악한 사회의 범법자가 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수한 죄를 짓고 산다. 그래도 양심이 있는 이는 통해 자복하고 회개한다. 무릇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남이니라”(잠언 4:23).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깨달아야겠다.

양심을 지키는 이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하나님에 합한 자요, 천국백성이요, 사회에서도 불러 쓰는 성실한 사람이다. 이 생명의 말씀을 지키는 모습을 우리 신앙인이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윤동주는 서시序詩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순결한 삶, 인간다운 삶을 소망하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민족적 양심상 괴로워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하셨으니 선한 양심대로 분투노력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로소득不勞所得, 부정축재不正蓄財, 와이료蛙餌料, 세상은 흑심이 깔려있는 거다. 피땀 흘려 떳떳이 벌어먹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요, 편안한 삶이다. 괜한 허욕을 버리고 인간세상 최고선最高善인 선한 양심대로 살자고 애쓰는 거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아서 지적을 받아도 무안하고 부끄럽거늘 남을 해치고 사회를 오염시키고 국민을 불안케 하는 사회악을 서슴없이 저지른다면 이것이야말로 양심도 어긴 사회악의 씨앗이다.

식욕, 물욕, 권력욕, 성적 본능을 양심의 법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 모함, 심지어 살해하는 사건사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으니 불안해서 어찌 살겠나.

부앙무괴俯仰無愧라 하늘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한 점 부끄럼 없는 살기 좋은 나라를 기대해 본다.   

위대한 지도자의 덕목의 최우선은 양심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치리하는 자세라 말하고 싶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 말씀을 상고하며 제각기 선한 양심을 지켜 평온한 삶을 영위하자. 이게 인간다운 삶이요, 지혜로운 삶이다. 이게 신앙인의 가치 있는 삶의 좌표이다.

착한 양심 착한 마음은 어떠한 유물론적 지식보다, 부정한 재물보다, 막된 권력의 힘보다, 더 강력한 무기요 고귀한 재산임을 명심하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순 없을까? 선한 양심대로 살 순 없을까?

우리는 앞으로 악행을 근절하는 빛의 역할을 그리고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키는 소금의 역할에 솔선수범 해보자. 그것도 선한 양심을 지키는 데서부터 말이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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