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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기사승인 2018.12.05  0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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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세웅 목사(전 중부연회 감독)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1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2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3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4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6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7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8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9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라10 사도행전 3:1-10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자녀들에게 부탁한 유언이 있다면, 그 자녀들은 평생 그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실행에 옮길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부탁은 ‘모든 족속에게 전도하여 제자 삼고, 세례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다. 또 바울은 전도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엄한 명령’이라 하였으니, 전도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마지막 부탁이다.

전도의 기적을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

베드로와 요한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베드로는 열정적이며 감정적인 사람으로 즉흥적이며 급하여 실수도 하고 예수께 책망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조용하고 침착하며 부드러운 사랑의 사람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하나가 될 수 없을 만큼 서로 달랐지만, 형제처럼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다르면서도 하나 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함께 교회에 모이고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함께 전도하였다. 무지개를 보자. 일곱 개의 색깔이 다 달라도, 다르면서 하나 되고 오히려 더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전도를 통해서 일어난 기적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 앞에서 전도한 사람은 40대 남자다. 그에게는 세 가지 큰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육신의 병이다.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고 자기 발로 일어서 보지도 못했다. 또 앞으로 병이 낫는다는 보장도 없다. 둘째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날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교회 문 앞에 와 교인들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육신의 병이나, 가난보다도 더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교회 문밖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어려움 속에서 40년을 살면서도 한번도 교회 안에 들어 와 본 적이 없고 예수를 만난 적 없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저주스러운 삶을 살면서 불행하고 비참한 생을 보내고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에게 전도하였을 때 놀라운 세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
첫째 예수를 믿고 영접함으로 온전한 구원을 받았다. 병에서 구원받아 40년 만에 일어서서 처음 교회 안으로 들어가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둘째 그 남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므로 전도의 문이 열려 남자 5000명이 전도 받고 예수 믿는 기적이 일어났다(행4:4). 셋째, 전도의 역사로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 누가는 당시 교회의 부흥 성장을 숫자로 기록하고 있다. 1장에서 120명, 2장에서 3000명(41절), 그리고 5000명(행4:4), 마지막에는 수만 명이 되었다(행21:10).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해병대에 근무하면서 북한 땅이 눈앞에 보이는 강화 송해면 당산리에 주민들을 위해 특별 파견을 받았다. 마을 회관에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에게 야학에서 공부를 가르치게 되었다. 연령에 상관없이 몇십 명이 모였다. 3개 부락에 120호가 살고있는 그 마을에는 교회도 없고 교인 한 사람도 없었다. 미신을 섬기고 있었다.

나는 전도할 욕심에 윤리 도덕 시간을 만들고 조심스럽게 성경을 가르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교회를 개척 설립할 것을 결정하고 “다음 주일날 교회를 시작할테니 이웃 사람들과 함께 참석해 달라”고 광고했다.

바닥에는 가마니를 깔고 천장 여기저기에 석유등잔이 걸린 회관에서 역사적인 교회 창립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한참 설교하는데 뒷문이 열리더니 동네 청년 1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들어와 석유등잔을 깨트려 유리조각과 석유가 가마니에 범벅이 되었고, 그들은 강대상 앞으로 나오면서 설교를 중단하고 나가라, 누가 당신보고 교회를 하라고 했느냐 하며 난리를 치며 방해하므로 결국 설교를 중단하고 회관에서 쫓겨 나왔다.

이후 동네 사람들이 방을 주지 않아 5㎞ 떨어진 강화읍에서 아침저녁 자전거로 드나들며 계속 전도했다. 어느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한 주민이 교회를 찾고 교인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찾아가 보니 이석조 씨 가정인데 두 부부가 여섯 살 된 아들과 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도하고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후일 이석조 성도는 장로가 되고 아내는 권사가 되었다. 그 당시 전도 받고 어린이 예배를 드리던 여섯 살 된 아들 ‘진선’이는 교회에서 잘 성장하여 후일 목사가 되었고 목회에 성공하고 부흥목사가 되어 중부연회 부흥단 단장이 되고 해병 목우회 회장이 되었다.

전도는 기적을 일으켰다. 사도행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30년 동안 일어난 전도와 기적의 역사, 그리고 그 열매로 각처에 교회가 설립되고 불길처럼 부흥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전도방법

베드로와 요한은 두 가지 전도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첫째 “우리를 보라”고 했다. 나를 보고 나의 행동과 생활을 보라는 것이다. 나를 보고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다. 행동으로 하는 전도를 말한다. 만일 이웃사람이 ‘당신 같은 교인을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느냐?’ 솔직히 당신 같은 교인들 때문에 교회 다닐 마음이 없다고 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질것인가? 예수께서는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셨다(마5:16). 착한 행실을 보여줘야 한다.

둘째 말하는 전도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우리에게 금과 은도 귀중하지만 더 귀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다. 베드로와 요한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열려 예수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40년 만에 처음으로 일어나 성전 안으로 들어와 기뻐 뛰며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다. 이런 기적을 보면서 많은 군중들이 모여 들었다. 또 그들에게 전도했다. 유대인들의 반대로 공회에 붙들려가 하룻밤 감금을 당하고 이튿날 내보내면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그때 베드로는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하며 계속 입을 열어 전도했다. 그들이 입으로 전도한 말씀이 사도행전 3:11-4:31, 장장 46절이나 된다. 그 결과 5000여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되었다. 만일 모든 교인들이 자기가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듣겠는가?

끝으로 우리가 전도를 위해 바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새벽기도 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하나님은 나에게 너무 귀한 것들을 주셨다. 생명과 건강, 그리고 물질과 시간이다. 나는 이 엄청난 것들을 무엇에 어떻게 쓰고 있는가?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너무 죄송스럽고 빚진 죄인의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나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고백한 그 말씀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행 20:23-24) 베드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죄인 아닌 죄인의 몸으로 로마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2년 수감을 당하고 어느 정도 자유스러운 몸이 되어 만나는 이들에게 전도하고 여러 교회에 옥중서신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로마에서 5㎞ 떨어진 ‘오스티안’에서 순교했다. 그야말로 전도자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썼다(딤후4:2). 그리고 로마 옥중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며 죽음을 눈앞에 기다리면서도 끝까지 전도하며, 지금 내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어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개가를 불렀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전도가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고 교회 안에서 열두 가지 봉사와 헌신을 한다 해도 그것이 전도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예언이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전도를 통해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역사하고 계시다.

기독교타임즈 gam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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