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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자와 동역자

기사승인 2018.11.13  16: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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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식 목사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중에는 개척교회를, 또는 목사의 사역을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지금 없다. 다 떠났다. 떠나간 그들의 이유는 내가 여기서 도움이 안되는 거 같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 작은 교회에 자신이 도움이 많이 될 거라 생각했다는 것을 전제한다.
지금 우리는 목사 혼자의 사역이 아닌 팀 사역을 하고 있다. 팀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는 사역이다.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이들은 돕겠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동역자이다.
‘돕는 이’와 ‘동역자’는 다르다. 돕는 이의 마음에는 이런 의식이 있다. .
‘이 일은 내 일은 아니지만, 당신을 위해서 나의 힘과 여력을 지원하겠다!’
그러나 동역자의 마인드는 다르다.
‘이 일은 나의 일이다! 그래서 함께 협력하여 해가는 것이다.’
동역자는 자기가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등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왜?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돕는 것과 동역하는 것에 대해서 구분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가사의 일이나 아이 돌보는 일을 남편이 아내에게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가사와 아이 돌보는 일은 남편과 아내가 동역하는 일이다. 아내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무슨 일이 생겨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할 경우 교회 전도사에게 맡겼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전도사의 입장에서는 돕는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부모의 일이고 그 잠깐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지원하는 돕는 일이 된다.
교회의 일은 목사 개인의 일이 아니다. 세상을 구원하라는 말씀을 사명으로 받은 지역교회는 지역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교와 구제 활동을 한다. 이 사역은 교회 공동체 모두의 일이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기 일이 되는 것이다. 그 자기들의 일을 함께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특정한 사람 개인의 일을 지원하는게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동역해야 할 일을 돕겠다고 하는 사람들로 인해 진통을 많이 겪었다. 처음엔 의욕에 차서 돕겠다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처음 왔을 때의 환호와 환대와 격려와 지지가 시들해서 그런건지(누구나 처음 함께 하겠다는 사람이 오면 환호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돕겠다는 이들은 자기들이 동참할 때마다 처음 강도의 환호와 격려가 없으면 시무룩해진다) 사역하는 순간에도 감정 기복을 드러내어 다른 동역자들을 힘들게 하고 심지어 그 안 좋은 영향이 주 사역 대상인 아이들에게 가는 경우가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들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결국 존재감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을 때 떠난다. 한 두 명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이… 인간이 원래 자신이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대우받기를 원하는 인정욕구가 있다고는 하지만, 참 심하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사역이나 사역의 대상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만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내가 돕는 자의 위치인지 동역자의 위치인지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독교타임즈 gamly@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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