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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떨림으로 얀 후스와 동행했던 시간들”

기사승인 2018.11.12  04: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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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자의 얀 후스 기행」 / 김승호 지음 /기독교문서선교회
여행으로 살펴본 ‘체코’ 종교개혁 입문서

체코의 종교지도자이자 체코 민족의 영웅으로 불리우는 얀 후스(Jan Hus, 1372?-1415). 루터의 종교개혁(1517)이 일어나기 100년 전,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까지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활동했던 얀 후스이지만 한국교회에는 그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체코 프라하를 한 번이라도 여행한 이라면 구시가지 광장 중앙에 서 있는 얀후스 군상을 기억할 것이다. 얀후스 군상은 체코의 역사에서 얀 후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얀 후스를 소개하는 책 「신학자의 얀 후스 기행」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단순히 신학적이거나 학문적으로 얀 후스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아닌 저자인 김승호 교수(영남대)가 신학자의 관점에서 체코 전역에서 얀 후스가 거쳐간 장소들을 다니며 보고 느낀 점을 기행문 형태로 쓴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이들은 ‘여행으로 살펴본 체코 종교개혁 입문서’라는 책의 부제처럼 얀 후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얀 후스와 함께 체코 종교개혁의 역사도 함께 공부하게 된다.

김승호 교수는 “지금까지 얀 후스와 관련 국내에서 발행된 여행안내서들은 프라하와 타보르 지역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며 “체코 전역을 걸쳐 얀 후스의 여정을 따라간 이번 여행은 매우 의미 있었던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얀 후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3개월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4박 15일 동안 체코 여행을 하며 메모했던 기록을 정리해 책으로 엮어냈다. 그의 여정은 프라하(후스의 대학생활, 교수 및 설교사역지)에서 자동차로 출발 타보르(후스 사후에 발생한 대표적인 후스전쟁 지역) - 코지흐라덱(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한 이후 첫 망명지), 세지모보우스티(후스의 첫 망명지 근처 소도시) - 후시네츠(후스의 탄생지) - 프라하티체(어린 시절 다니던 학교) - 체스키크롬로프(후스의 어린시절 남 보헤미아의 대표적인 도시) - 쿠트나호라(쿠트나호라칙령 및 후스전쟁 지역) - 크라코베츠 성(후스가 독일 콘스탄츠로 떠나기 직전 망명지), 라코브닉을 돌아본 뒤, 다시 프라하로 오는 일정이었다.

김승호 교수는 “얀 후스의 자취를 따라가려는 여행을 하려면 후스 출생지인 체코의 후시네츠에서 출발해 그의 사망지인 독일의 콘스탄츠까지 돌아봐야 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 콘스탄츠까지 자동차를 운전해 이동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고 계획된 일정 속에서는 소화할 수 없었다”며 “제한된 상황으로 후스가 체코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크라코베츠 성까지만 방문하게 됐다”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기회가 되면 크라코베츠에서 콘스탄츠까지 600km의 여정을 순례하고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쓰여졌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여행 경험만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방문했던 각 장소와 관련된 정치, 역사, 문화, 교회, 신학 등의 배경적 내용과 함께 이런 서술을 바탕으로 한국교회를 전망하는 신학자의 성찰을 함께 책에 담아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다사랑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저자는 얀 후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느꼈던 소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얀 후스의 종교개혁에서 베들레헴 채플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베들레헴 채플은 뷰유한 상인이었던 안크르지쥬와 궁정대신이었던 미흘하임의 하누슈가 1391년 우물이 하나 있는 정원을 구입해 채플부지로 기증해 지어지게 됐다. 베들레헴 채플을 통해 카를대학 내에서만 논의될 수 있었던 사상들이 일반인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는데 1402년 얀 후스는 이곳에서 설교가로 활동하면서 개혁운동의 중심이 됐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체코어로 설교가 이루어졌기에 일반 사람들에게 종교개혁운동의 불씨를 심어주는 장소가 됐다. 바츨라프 4세 아내인 조피 왕비가 찾아와 설교를 듣기도 할 정도로 후스의 설교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후스는 프라하를 떠나야 했던 1412년까지 이곳에서 설교했다고 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승호 교수는 “여행은 굳어 있던 의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전제한 뒤, “나 역시 이번 여행에서 책과 논문을 통해 만났던 얀 후스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얀 후스를 만날 수 있었다”면서 “활자화된 후스가 아닌 더욱 더 생생하고 선명하고 눈에 보이는 얀 후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여행소회를 밝혔다. 또한 김 교수는 “600년 전 얀 후스가 지나간 장소를 따라가면서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떨림으로 그와 동행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면서 “본받을 만한 신앙 위인이 사라져 버린 이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이들마다 희미해진 신앙 열정이 다시금 타오르는 계기가 되길 기도한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얀 후스(Jan Hus, 1372?-1415)

얀 후스는 체코의 기독교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영향으로 성서를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대립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했다.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가 화형당한 이후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보헤미안 공동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의 주장은 마르틴 루터 등 알프스 이북의 종교개혁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에는 18세기 이후에 설립된 모라비아 교회 혹은 체코 개신교라는 명칭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 ko.wikipedia.org>

김준섭 기자 joon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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