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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empest』 폭풍우 바람이 불어온다③

기사승인 2018.11.08  15: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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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범 목사

때때로 우린 괴로운 일,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애씁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잊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망각만이 최선은 아닙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며 ‘너는 너이기 위해 네 몫의 풍파와 마주 설 것’이라고 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2년의 유배를 겪으면서도 프로스페로는 ‘거기서’의 기억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에게서 현실을 부정하라는 망각의 명령은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망각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이곳’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와 정치질서를 겪어온 셰익스피어는 신의 섭리라는 이름하에 ‘이곳’을 애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와 북유럽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고대하던 ‘개인’이 탄생한 것처럼, 여기 프로스페로 역시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상을 그려냈던 것입니다.

자유이므로
찬탈 당하기 전과 이후, 놀랍게도 프로스페로는 한결 같았습니다. 바로 학문을 쌓은 데 전념했던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위엄과 인문학에 명성이 높아 비교할 자가 없었다”고 치켜세울 정도였습니다. 분명 프로스페로는 마법을 통해 폭풍우를 일으킴으로써 극적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시해야 할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그의 지식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법이 폭풍우를 일으켜 상황을 전복시킬 물리적 힘을 발휘했다면, 독서는 내면을 다스리는 심리적 힘의 요인이었습니다. 그리스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미할리스 대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미할리스’ 대장은 아홉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인들 손에 교수형을 당한 기독교도들의 발에 입을 맞추게 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게 하고는 명령했다.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 누가 이분들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유.” 

프로스페로는 섬에 갇힌 채 자유를 배웠습니다. 자유를 결박당했는데도 곁에 맴돌던 자유를 입었습니다. 보통 『템페스트』를 말할 때 마법과 폭풍우에 대해서 언급하곤 합니다. 맞습니다. 폭풍우를 일으킨 마법은 사건의 발단이며 엄청난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인문학’ 또는 ‘학문’으로 규정된 마법서적 연구는 『템페스트』에서 결코 소홀히 다뤄선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16-17세기에 발흥한 영국 인문주의의 기원은 15세기 이탈리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문주의란 중세시대를 극복하고 고전시대의 지적, 예술적 영광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역사’와 그것의 일부인 ‘문학’이 재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Ad fontes ‘근원으로 돌아가기’란 슬로건을 기독교회에 적용해보면 ‘성서로 돌아가자’입니다. 결국 14-16세기에 걸쳐 일어난 르네상스 Renaissance와 인문주의, 그리고 종교개혁을 말할 때 ‘인간’이란 개념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한 인간이며, 무엇에 의한 인간입니까. 자유로서의 인간입니다.
프로스페로가 섬에 갇혀 유배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그는 복수의 화신이 아닌 고매한 인격을 소유한 자유자가 된 것입니다. 분노에서 벗어났습니다. 복수에서 결박이 풀렸습니다. 신의 섭리를 인정하고, 폭풍우를 일으킨 도구들을 모두 버린 것은 절대적인 용서의 언약이었습니다. 옮긴이는 마법 도구들을 바다에 던져 버린 프로스페로의 행동을 두고 번복 없는 용서와 절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작품 이후 셰익스피어가 고향으로 돌아간 것과 연계해서 생각할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16-17세기에 일어난 영국 인문주의(15세기 이탈리아 영향)를 생각한다면, 마법서적 곧 책은 그로 하여금 폭풍우를 일으켜 화합을 이뤄낸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아울러 그 시대를 함축하는 메타포(metaphor)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그리고 종교개혁 모두가 인간의 자유를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영범 목사(갈릴리교회)

기독교타임즈 gamly@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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