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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구 목사님의 고귀한 일생 알게 되어 감사

기사승인 2018.11.08  15: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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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부문 최우수상 - 김사라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감리회와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신석구 목사 전기 ‘출이독립’(이덕주 교수 저, 신앙과지성사)에 대한 독후감 공모전이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위원장 이병우 감독)가 주관으로 진행됐다. 독후감 공모전에서 아동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김사라 학생(함께걷는교회, 초6)은 책 ‘출이독립’을 읽어내려가며 신석구 목사가 처했던 상황과 자신을 비교해가면서 그의 신앙와 애국애족 정신을 이해하려 애썼고, 결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독교타임즈는 ‘출이독립’ 독후감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6주에 걸처 게재한다. <편집자주>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길목에 아빠가 한 권의 책을 가져다주었다. 『출이독립』, 이름부터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8월 마지막 주일에 지방(서울연회 노원지방)에서 열렸던 성경골든벨대회에서 우승을 했을 때 아빠는 또 다른 도전을 해보지 않겠냐며 독후감 공모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나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좋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빠가 건네 준 책을 받았을 때, “과연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책 제목도 어려웠지만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내 수준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어려운 단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아빠에게 물어보기도 해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신석구 목사님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 목사가 되었을까? 정말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처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 궁금증 때문에 책을 읽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다. 어쨌든 답은 친구의 전도 덕분이었다. 신석구 목사님은 19세가 되던 해 10월 달부터 자신이 ‘타락 생활’을 해왔다고 고백한다. 또 자신의 불안한 미래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런 방황의 삶을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친구인 김진우였다.
김진우는 서울에서 훈장 일을 하던 신석구 목사님을 찾아와 약 장사를 같이 하자며 제안했다. 신석구 목사님은 훈장 일이 훨씬 더 안정된 일이라 생각했지만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김진우를 따라 나선다. 그렇게 친구와 동행하던 신석구 목사님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고랑포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되는데, 거기서 집 한 채를 빌려 약국을 열게 된다. 그런데 친구인 김진우는 약국을 잘 돌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랑포 약국은 전도소였고 친구는 약을 팔면서 전도하는 전도인이었던 것이다.
신석구 목사님은 전도를 받고 3개월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1907년 7월의 어느 날 저녁식사 후에 신석구 목사님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 33세였던 목사님은 그때로부터 거꾸로 올라가 7세까지 자신의 죄를 헤아려 보았는데 50여 가지의 죄목을 손가락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래, 난 죄인일세” 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 나이는 고작 13살, 나도 신석구 목사님과 같이 13세로부터 거꾸로 올라가 나의 죄를 헤아려 보았다. 신석구 목사님은 50여 가지의 죄목을 생각했지만, 나는 그보다 많은 죄목이 떠올랐다. 이제 겨우 13살 밖에 안 되었지만 나는 더 많은 죄가 생각났다. 나도 역시 “그래, 난 죄인일세”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전도를 받던 시기 신석구 목사님은 민족의 문제로 고뇌하고 있었고 깊은 고민과 패배의식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중국의 고대 역사서 『통감』 3권에 실려 있던 동중서의 글귀 첫 구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간섭하여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실로 두렵도다. 도무지 도가 없는 세상만 아니라면 하늘은 그것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노력하나니” 라는 구절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구절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신석구 목사님이 주목한 것은 ‘도’였던 것이다. ‘도’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는데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종교적으로 깊이 깨달은 이치, 또는 그런 경지”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신석구 목사님은 나라가 망하고 위태로운 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도가 없음”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신석구 목사님은 그동안 ‘도’가 유교의 도였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기독교의 ‘도’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신석구 목사님은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고, 개종과 함께 전도하는 사람이 되길 희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17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8년 수표교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렇게 원하던 독립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신석구 목사님이 왜 그토록 독립운동에 참여하려 했을까 생각해보았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이 두렵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혹여 다른 사람도 참여하는데 목사인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바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신석구 목사님에겐 겨레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 타 올랐던 것은 확실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신석구 목사님이 1910년에 전도사로 추천을 받았다가 60원의 부채 때문에 전도사 직첩을 받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그때 목사님은 연회 마지막 날 자신의 이름이 빠졌을 때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분노의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오! 예수님도 돈이 있어야 믿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말이다. 나는 돈이 많아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석구 목사님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테지만 전도사가 되지 못한 당시의 심정이 얼마나 좋지 않았을까 이해도 되었다. 
그러나 전도사 시험의 낙방으로 좌절과 분노밖에 남지 않았던 1910년 9월이었지만, 신석구 목사님은 오히려 기도로 겸손의 은혜를 입었다. 그리고 후에는 비록 개성과는 딴판인 궁벽한 시골이었지만, 홍천에서 목회를 하면서 전도자로서 지녀야 할 마음 자세와 생활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그곳에서 진정한 목사로 다듬어진 것이다. 당시 홍천읍교회는 어른 4명, 여학생 4명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가 생각났다. 우리 교회도 어른 5명, 어린이 4명밖에 없는 작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교회의 어려운 환경이 우리 아빠 목사님을 진정한 목사로 다듬어가는 환경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신석구 목사님은 남감리회 춘천 지방에서 인정받는 목회자로 성장하였는데, 친구 오화영의 권고로 3·1운동 민족 대표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신석구 목사님이 자신은 목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민족 대표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줄 알았다. 그러나 정반대였다. 오히려 신석구 목사님은 “목사가 정치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기독교인이 신조가 다른 천도교, 불교인과 연합하여 일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교리적인 문제로 주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저하다가 기도하는 중에, “수천 년 내려오던 강토를 네 대에 와서 빼앗긴 것도 큰 죄인데 이제 찾을 기회가 와서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더 큰 죄가 아닌가?” 라는 음성을 듣고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신석구 목사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그대로 있지만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라는 성경을 말씀을 기억하며 정말 ‘죽기 위해’ 운동에 참여하였다. 정치적인 판단이 아니라 종교적인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죽음을 각오한 결단이었기에 신석구 목사님은 3월 1일 선언식과 그 이후 재판 과정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독립 의지를 밝힐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출이독립”의 뜻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게 깨달아졌다. ‘출이독립’이란 감옥에서 나와도 계속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다시 감옥을 가게 되더라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재판을 받을 때 죽음이 두려워 “감옥에 나가서도 독립을 외칠 것이냐?” 라는 질문에 “안 외칠 것이다” 라며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신석구 목사님은 달랐다. <그리스도회보>에 실렸던 “시작하면 끝까지 볼 것”이는 글처럼 끝까지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석구 목사님은 기독교인으로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마 5:44)처럼 일본을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등 일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볼 때마다 일본은 절대 좋아할 수 없었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나쁜 일본’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석구 목사님은 일본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독립을 추구하겠다는 의지 또한 버리지 않았다. 나는 과연 신석구 목사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을까? 내가 신석구 목사님의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신석구목사님은 독립은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약속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영토는 빼앗겼지만 독립을 향한 민족정신이 살아 있는 한 나라는 이미 독립한 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완전한 독립을 향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석구 목사님은 투옥되고 나서 양한묵이라는 사람이 독살이나 고문으로 희생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공포에 싸였다. 하지만 그 공포에도 불구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시작한 독립운동이었기에 곧 자신감이 회복되었다. 그 후 성탄절이 찾아왔을 때 신석구 목사님은 감옥에서 성탄절을 맞는 것이 착잡했지만 감옥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던 은혜의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이 장면을 읽으면서 신석구 목사님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만약 내가 감옥에 있었다면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보고 싶어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기도할 생각도 못하고 마음이 너무도 복잡했을 것 같다. 그럴수록 기도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만약 나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신석구 목사님은 감옥 안에서 받은 은혜를 바탕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용기와 위로를 전해 주었다. 이로써 ‘감옥 목회’가 시작된 것이다. 
신석구 목사님이 받은 신앙 훈련은 정말 혹독한 훈련이었다. 나중에 감옥에서 풀려나고 천안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신석구 목사님의 목회는 완숙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그 곳에는 거지와 나환자들이 많았는데, 신석구 목사님은 그런 환자가 집으로 찾아오면 그냥 보내지 않고 집안으로 불러들여 직접 밥을 차려 먹여 보낼 정도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하는 분이었다. 그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신석구 목사님은 북한 당국에 대항하다가 그 권력에 의해 투옥된 상황에서 희생당했다. 나는 신석구 목사님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고 마음 깊이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지막가지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살았지만 신석구 목사님은 시신도 없이 묘뿐이었다. 모세가 묻힌 땅, 그 무덤을 아는 사람도 없듯이, 예수님의 무덤도 정확하지 않듯이 신석구 목사님의 무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만약 내 가족이 죽었는데 시신도 없고 무덤 뿐 이라면 너무나 슬플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만약 신석구 목사님이 기독교인도 아니고 목사님도 아니었다면 이런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신석구 목사님의 삶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석구 목사님과는 전혀 다른 시대와 환경에 살고 있지만 신석구 목사님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나는 신석구 목사님처럼 힘든 상황일 때, 아니 꼭 힘든 상황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힘든 상황이라면 나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힘든 상황이 아니라면 그 상황에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교회에서 반주로 섬기고 있다. 9명밖에 없는 작은 교회에서 찬송가 반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배에서 반주로 섬기고 있지만 기도를 많이 못한다는 반성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신석구 목사님의 모습에 큰 자극을 받았다. 신석구 목사님은 힘들 때 마다 묵상하며 기도했지만 나는 힘들고 괴로울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기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신석구 목사님의 삶을 보며 섬김의 사람, 사랑의 사람,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신석구 목사님의 고귀한 일생을 알게 되어 감사하고 이 책을 추천해 주신 아빠에게 감사를 드린다.

기독교타임즈 gam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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