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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목사는 안 되겠다

기사승인 2018.10.21  01: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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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허태수 목사, 성암교회

엊그제 교회 청년들이 손수 짠 책상 하나를 짊어지고 내게로 왔다. 육십 생애에 가장 빛나는 내 소유의 책상 하나를 받아 놓고 며칠 동안 코코넛 오일을 바르고 또 발랐다. 물론 그럴 필요 없이 잘 만들어진 완성품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나를 그 안에 불어 넣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고, 이런 물건 하나를 만들지 못하는 조막손이를 탓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렇게 내가 조막손이로 ‘생각이나’, ‘말’, ‘글’, ‘입’이나 팔고 사는 ‘하찮은 노동자’가 된 것은 순전히 조상 탓이다. 조선 때 중상억압정책(重商抑壓政策)을 쓰지만 않았던들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아시다시피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해서 글을 읽는 선비가 제일 아랫목에 앉고, 그다음이 농사짓는 사람, 그다음이 물건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제일 고두바리가 만든 물건을 팔러 다니는(혹은 파는) 상인들이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사람, 아무것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이 제일 삶의 윗자리에 앉아서 되레 삶과 생존에 요긴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겨 물건 만드는 종자는 대면도 하지 않은 채 물건을 구해다 썼으니 이래서 뭔 세상의 도리가 세워졌을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보면 중국의 지도자들이 조선의 지도자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중국의 인물들(지도자)은 자기가 쓸 물건을 자기가 직접 고르므로 물건을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고르고, 사용하는 중에 물건의 장단점을 알아 물건의 향상을 상공인에게 늘 가르친다는 것이다. 반면 조선의 인물들은 물건을 보는 안목도,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에 물건의 불편을 개선하는 데 일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물건 만든 ‘사람’만 족친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상점(商店)을 순수한 우리말로 ‘가게’라 하지 않았던가. ‘가게’라는 말의 한자는 거짓 가(假)와 집 가(家)를 더한 ‘가가’였다. 그러니까 ‘거짓의 집’이라는 말이다. 가짜로 지어놓은 집이라는 뜻이다. 상업은 정해진 진짜 집에서는 하는 일이 아니고 ‘가가(假家)’에서 임시로 하는 일인 것이다. 

중국에서 사신이 와서 물었다. “너희 나라는 거리에 가게가 왜 하나도 없느냐?”고. 그러자 다음 날 급히 민가에다가 가가를 급조해서 상점인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길가에다가 자기 집의 물건을 다 가지고 나와서 파는체했단다.

아, 내가 왜 청장년들이 만든 책상을 볼모로 이 옛날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2년 전 딸로부터 신장이식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일어난 성찰 때문이다. 나는 한 달 가까이 몇 권의 책을 추궁했다. 물론 예수와 그 일행들의 역사, 행적, 배경, 그들의 생존이 지향하는 방향성에 관한 책들이었다. 내가 병원에서 그런 사색과 독서를 하다가 문득 청년들이 만든 책상 생각이 났다. 내가 내 손으로 만들지 못한 책상에 앉아 뭔가를 재생산하여 내 생물학적 생존이 유지되듯이, 내가 하는 목회, 목사의 삶, 설교 혹은 가르침에 관한 것에도 이 사실적 적용, ‘내가 만들지도 못한 것들을 가공해서 그동안 설교하고 물건을 만들어 임시로 또는 가짜로 길거리에 내놓아 팔지는 않았나’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그런데 이런 통찰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생성된 뒤다. 앞으로도 내 손으로 청년들같이 내가 쓸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재단하고, 베고, 자르고, 다듬고, 못 박고, 칠하여 생명을 공궤하는 물건을 만들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제 내가 하는 일, 목사로서의 삶 혹은 설교하거나 예수님을 세상에 알려 세상과 사람의 나라를 세우려는 일에서는 가가인(假家人) 노릇, 즉 가짜가게를 운영하는 허수아비는 안 되겠다 싶은 대견한 힘이 생겼다는 의미다. 

나는 이제 가가(假家)에 살지 않겠다. 아니 가가(假家)에 내가 만들지 않은 물건을 내놓지 않겠다. 내 전 존재의 기술로 생산한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그가 이루는 삶을 진열대에 올리겠다. 물론 내가 이런 목사로 산다 해도 제가 쓸 물건을 제가 만들어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절대적 창조인들에게는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서도.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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