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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 때 잘 받아야 한다

기사승인 2018.10.21  01: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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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욱재 교수(미국 사우스다코타 주립대학)

   
▲ 허욱재 교수(미국 사우스다코타 주립대학)

많은 시간 동안 다양한 학계에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소비자 행동들 중 하나는 이타주의라고 불리는 행동이다. 이타주의란, 쉽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 주거나 선물을 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친구에게 아무 이유 없이 선물을 준다던지, 길가의 노숙인에게 돈을 쥐어 주거나 외투를 벗어 준다던지,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지하철 철로에 빠진 취객을 도와둔다던지, 아무런 경제적 이득도 없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먹이고 재운다던지, 경제적으로는 그 효율성이 전혀 낮은 행위들이 바로 이타주의적 행동이다.

다양한 학계에서 여러 이론으로 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현실적인 면에서 투자의 개념을 사용한다. 친구에게 선물을 주거나 자녀에게 많은 애정을 쏟는 것은 어쩌면 미래를 위한 대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지속가능한 소비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들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설명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선물이나 대가 없는 도움은 종종 권력의 과시 혹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도 해석이 된다.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 우리나라는 중국와 조공무역을 행했던 적이 있다. 중국은 대국으로서 소국인 우리나라에게 더 많은 하사품을 내어 주어야 체면이 섰던 것이다. 중국은 하사품을 내어 줌으로써 권력을 유지하고, 우리나라는 실익을 챙겼던 것이다.

사회학 및 생물학적인 면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론으로는 호혜성 이타주의(repciprocal altruism)가 있다. 인간이라는 종이 존속을 하기 위해서, 인간 집단 내외적으로 호의를 베풀어 자연 생태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종이 존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사람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이타주의는 자식에게 한없이 내려주는 부모님의 사랑이다.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따진다면,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대부분 비효율적이다. 자녀 한명에게 사용될 비용을 그대로 모아, 매년 3% 이율의 적금에만 들어도 그 액수가 20년 정도 쌓이면, 꽤나 큰 액수가 될 것이다. 자녀를 기르는 20년간 매우 비효율적 비용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자녀 예시를 보며, “아! 맞아. 애를 낳아 기르느니 차라리 돈을 모으자”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심리치료 상담을 받아 보기를 권한다. 어찌되었든, 자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이 어느 새인가 당연하게 여겨졌고, 내 자녀에게 쏟는 내 노력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 호의를 받는 쪽에 있다. 이타적 행위가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설명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타적 행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출물이 명확하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위험한 투자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이것은 바로 투자 대비 산출물이 수혜를 받는 사람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타적 행동이 그 가치를 발휘할 때는, 수혜를 받는 사람이 오롯이 주는 이의 의도를 받아들일 때이다.

그러나 이타적 수혜를 받은 사람이 고마워하지 않거나, 오히려 이타적 행동을 오해하였을 경우, 그 결과는 생각과는 달리 적대적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인을 위해 선물을 샀으나, 잘못된 선물을 골라 싸움만 하고 헤어질 수도 있다. 더욱 좋지 않은 예는, 선물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주는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경우이다. “급이 맞는 선물이나 도움”이 아니면 오히려 관계가 어그러지는 경우도 일상다반사이다. “나를 뭘로 보고” 혹은 “네 수준이 뭐 그렇지”라는 반응이 가끔 수혜자로부터 나오기도 하고, 이는 관계를 어그러뜨린다. 이러한 경우 과연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답은 명료하다. 사람들은 이타주의적 행동을 하도록 태어났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배려하며 대가 없는 사랑을 나누어 준다. 아마도 이러한 이타주의적 행동은 사람이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 1:26)” 만들어져서이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가없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시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주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 따라서 받는 자가 주는 이의 의도를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이타적인 사람의 본성을 헤치는 일이 된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영화에서 나왔던 대사가 생각이 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알아요.”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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