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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

기사승인 2018.10.11  21: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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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복 목사(하늘문교회)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2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4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5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16 히브리서 13장 12~16절

 

이기복 목사 / 하늘문교회

오늘은 신약 속의 구약이라고도 하는 히브리서 13:12-16절의 한정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로마서 12:1-2절에 우리가 드릴 예배에 대하여 아주 간단하지만 핵심적으로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에서 보면 세 가지 차원의 예배를 강조하였습니다. 즉 몸으로 드리는 헌신의 예배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온전히 제물로 드리는 번제이고 소제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 이것이 바로 속죄제이고 화목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드리는 예배가 바로 속건제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세 가지 예배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거창하고 대단한 예배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배운 사람들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들까지, 많이 가진 부자로부터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드릴 수 있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물이 없이는 나갈 수 없었으며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가는 것도 신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제물이 되신 이후에는 이러한 제도가 철폐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제단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며 누구든지 드릴 수 있는 예배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찬미의 제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15절).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본문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더 쉽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예수의 이름으로”와 “언제나”라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계속해서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Let us continually offer..).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 예배의 특징은 찬송의 제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은혜요 은총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의 기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와 은총을 생각하며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께 끊임없이 찬송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엡 5:1절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과 오늘의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고 “너희의 마음으로”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아름답고 풍요롭고 시와 찬미가 저절로 나오는 좋은 계절에 찬미의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러분의 삶이 더욱 풍성하여 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루마니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자그마치 13년 동안 지하 감옥생활을 한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mbrand) 목사님은 2001년 2월 하나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책이 “하나님의 지하운동” 영문제목으로 “In God’s Underground”입니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감옥에서 지난 13년이 나에게는 너무 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홀로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믿음과 사랑을 넘어선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에 지하 감옥도 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이 있고 감사가 있고 소망이 있는 곳은 그 어디나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발에는 쇠고랑을 찼고, 온 몸에는 상처 투성이었지만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계속해서 찬양을 하는 중에 병이 낫고 우울증이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함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습니다. 찬양은 죽음도 이깁니다. 찬양은 지옥의 권세가 무너집니다. 위로부터 능력을 부여 받고 하늘문이 열립니다.

 

2.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예배입니다(12-13절).

본문 12-13절에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3절 말씀을 좀 더 원문에 가깝게 해석을 하면 “그러므로 우리도 영문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그분을 위하여 헌신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헌신의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헌신예배를 영어로 표현할 때 ‘Worship of sacrifice’라고 합니다. 즉 희생의 예배라는 뜻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주님 앞에 제물이 되는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을 살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하고 신약시대의 헌신적인 예배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고 거룩한 삶이 무엇일까요? 희생과 헌신의 삶입니다. 헌신이 있는 곳에 기적이 있고, 향기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예배, 남을 위해서도 헌신하는 예배가 가장 은혜스런 예배, 응답과 축복이 임하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가 너무나 타락하여 헌신보다는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려 합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편안하고 간단하고 짧고 부담이 없는 예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헌신하지 않고 예수를 믿을까? 어떻게 하면 부담 없는 예배를 드릴까?에 전전긍긍합니다. 이러한 예배에 무슨 은혜가 있고 축복이 있겠습니까?

신학자 본 회퍼는 기독교인들이 값싼 은혜를 열망하는 것을 이렇게 비판하였습니다. “죄의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설교,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고난이 없는 은혜, 성육신의 실천이 없는 은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희생과 헌신이 없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해외 선교지에 가보면 보통 두 시간씩 열정과 믿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1절에서 “형제들아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어떤 제물보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헌신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3. 선행이 수반되는 예배입니다(16절).

본문 16절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행함이 따르는 생활의 예배입니다. 예배는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참된 예배는 예배를 마치고 성전을 떠나가면서 생활로 예배를 실천해야 합니다.

선행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생활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인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했고 또한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5:16절에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전체를 통하여 선한 행위가 따르는 신앙생활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의 중심 핵심은 “행함이 수반되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고 말씀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약 2:7). 온전한 믿음은 행함이 수반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예배는 선한 행함이 수반되는 예배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회의 비난을 받고 위기에 처하는 것도 바로 선한행위가 따르지 않는 신앙과 예배생활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성과 사랑과 선행은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의 소금이요 향기입니다. 주님의 편지입니다.

 

역사적인 실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인종차별 철폐 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가 남아공의 “투투”(Desmond Moilo Tutu) 성공회 대주교입니다. 투투 주교에게 “당신이 어떻게 성공회 주교가 되고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기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는데 성직자 차림의 훤칠한 백인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남아공은 백인들에게 철저한 인종차별을 당하던 때인지라 만약 백인이 지나가면 흑인들은 한쪽으로 물러서서 고개를 숙이고 백인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투투 어머니도 길 한쪽으로 물러서려고 하는데 그 백인 재빨리 먼저 한 쪽으로 비키고는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한 뒤 투투의 어머니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어린 투투가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엄마 저 백인이 왜 저러는 거예요?” 이 때 어머니의 대답은 투투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 분은 성공회 주교인데 성경에서 선을 행하라고 배웠기 때문에 흑인들에게도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하는 거란다” 그 때 어린 투투는 마음에 “나도 나중에 자라서 반드시 성공회 주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결국 성공회 신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행을 통하여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남아공이라는 국가의 미래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투투 주교는 남아공의 흑인 초대 대통령 “넬슨 만델라와 함께 남아공의 독립과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를 세우는 일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선행이 모아져 우리의 가정을 교회를 더 나아가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선을 행하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 찬미의 제사와 나를 온전히 드리는 헌신의 제사와 선행과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는 삶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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