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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어디서 다시 시작할까?

기사승인 2018.09.06  02: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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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샘 선교사(인터서브 대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화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에는 변화가 없겠으나 변화되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가운데 우리들의 선교 사역는 계속 변화돼왔다. 

세계의 선교 상황은 급격히 변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 선교는 서구에서 시작된 지난 200여 년 동안의 선교적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해외 및 타문화 선교, 복음전도와 교회개척의 우선성, 선교사를 통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백성과 함께 일해오신 하나님 선교의 긴 역사 가운데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선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났던 선교 사역임을 기억해보자. 과연 미래에도 이 키워드 중심의 선교가 적합할까? 예를 들어보자. 한국 교회에 이미 다가온 가장 큰 선교적 과제는 통일을 전후로 한 동북아 국가들의 소통, 교류, 공존, 화목이 아닐까 싶다. 급격한 변화 가운데 필요한 것은 방법론이 아니다. 본질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크게 세 가지 방향의 접근을 제시해본다. 

첫째, 신학적 접근이다. 선교는 그 성격상 사람의 필요나 현장문화에서의 요구에 집중하기가 쉽다. 이럴 경우, 선교학은 결국 인간학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히려 현장에서의 필요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생각해야한다. 즉 신학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 교회가 선교적·사역적 열심으로 잘못된 신학을 만들거나 주장했을 때 일어났던 무수한 폐혜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신학은 결코 탁상공론은 아니다. 인간 문화 속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는 해석의 상황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공동체적 접근이다. 에베소서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역사와 세상을 변화시킴에 있어서 사용하시고자 오랫동안 준비해 오신 놀라운 비밀이다. 전체 하나님 백성의 모습과 그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의 포스트모던 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집중케 하며 전체 하나님 백성을 향한 이해에 무지하게 한다. 내 개인이 하나님 음성 듣는 것보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을 이해함이 우선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셋째 성경적 접근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일부 구절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포함한 전체 성경적 기초에서 성찰을 시작해야한다. 예수님과 바울 모두 유대인이었고 복음서와 서신서 모두는 당연히 구약성경의 세계관을 전제한다. 선교는 총체적이며 사회적이며 공공적이다.

변화 가운데 선교를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할까? 내 제안은 성찰이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광야에서의 40일로 시작하고 바울의 사역 시작 전 아라비아 반도와 고향 다소에서의 긴 칩거가 있었음을 기억하자. 그 성찰은 하나님을 중심 주제로 하기에 신학적이며 과거의 교회사와 교리를 돌아보고 동시에 현재 전체 세계 교회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뤄지기에 공동체적이며 동시에 인류학적이며 사도적 신앙과의 연결 가운데 확인될 것이기에 성경적 성찰이 될 것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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