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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감리교인이 아닌가 봅니다?

기사승인 2018.09.06  0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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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목화 기자

취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교역자 부류가 있다. 세대와 성별, 지역을 막론하고 연락 자체가 닿을 수 없는 부류다. 문자 메시지도, 전화도, 이메일도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주변인에게 호소를 해도 무응답이다.

내가 신학교 후배가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같은 동문과 다른 입장이기 때문일까. 혹은 내가 같은 계파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취재를 다른 방향으로 우회해 진행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신학교 동문이 아니어도, 후배가 아니어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같은 감리교인이기 때문이다. 같은 교회, 지방, 연회가 아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는 감리회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일절 ‘김 기자 사절’인 교역자를 맞닥뜨리게 될 때 이따금 심술이 날 때도 있다. 당사자를 욕할 법도 한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하나뿐인 선배를 흉본다. 왜 같은 동문이 아니어서, 왜 다른 신학교에 가서.

사실 기자가 같은 동문이라고 해서 감리회에서 큰 도움을 받을 일은 없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게 기자다.

감리회에서 기자활동을 시작할 무렵 위안을 삼았던 생각이 있다. ‘그 어떤 감리회 신학교도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울타리가 없어 더욱 자유로운 취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뿐인 선배를 흉보면서 걱정 하나가 생겼다. ‘감리회의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나 때문에 후배들이 고생하면 어떡하지?’

선배 흉 보는 일은 이 바닥에 하소연 할 곳 없는 기자생활살이에 그나마 댈 수 있는 핑계였지만, 정작 후배기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기우(杞憂)라 할지라도 괜한 노파심이 들었다. 또 군걱정과 동시에 든 생각이 있다. ‘성도를 시험들게 하는 목회자라니….’

예수님이 유월절 엿새 전 이르셨던 베다니에서의 말씀이 생각난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 잔치가 열린 그 집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드렸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룟 유다가 마리아를 채근했다. 돈 아깝게 뭐하는 짓이냐고. 하지만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돈’이 아닌 곧 십자가에 매달리실 예수님의 별스런 마음을 헤아렸던 마리아였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는 오로지 돈만 보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마음을 봤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을 그 몇 안 되는 푼돈에 팔아버렸다.

사랑하면 서로의 마음을 보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면 못할 일도 없다. 서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감리교회는 서로 사랑할 줄을 모른다. 회개할 줄은 더욱 모른다. 같은 감리교인인데 집단으로 편을 가른다. 그래도 요셉처럼 시련 속에서도 꿈꾸며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우리 모두 하나되는 감리교회라고 적어 본다.

김목화 기자 yesmoka@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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