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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넘어 사랑으로

기사승인 2018.06.14  11: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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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현 목사. 은진교회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언어는 자기의 생각을 밝히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지만, 행동도 언어만큼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어떤 경우에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기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무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10:25)” 하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께서 성경은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느냐?” 고 되물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눅10:27)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그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 말씀을 실천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율법 교사는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10:30-35)’이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나그네의 곁을 세 사람이 지나갔다.
첫 번째로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이었고, 두 번째는 레위인이었다. 이 두 사람은 종교인이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던 매우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높은 도덕률을 요구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피하여 지나갔다. 레위인도 성전에서 섬기는 중요한 사람인데, 그 사람도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더 적극적으로는 피하여 지나갔다. 이 두 사람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레21:10-11)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찌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라고 기록되었다. 제사장은 언제든지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제사장의 직무는 사사로운 도덕적 행위를 넘어서는 귀중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인은 이 직무를 충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행동없는 행동 속에서 자신들은 종교적 직무를 귀하게 생각하고 그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한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뜨겁게 내리 쬐는 햇볕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만난 가련한 나그네의 생명은 더욱 위급해졌다. 그런데 마침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죽음 직전에 이른 나그네를 발견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사마리아 사람은 즉시 응급조치를 취한 후에, 안전한 호텔로 이송하고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급해서 그 환자를 떠나면서 호텔 주인에게 그 환자를 잘 돌보아 줄 것을 당부하고, 모든 비용은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확약한 후 그 자리를 떴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은 도덕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도덕적 삶이 우리에게 영생을 줄 것인가? 아니면 사랑이 우리에게 영생을 줄 것인가? 를 물으시면서, 우리에게 도덕적 삶이 아니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생명이 넘치는 공동체는 사랑이 넘치는 사회이다.
 우리는 사랑을 나눌 때 몇 가지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무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다. 사랑은 남에게 주기에는 아까운 것,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다.
둘째는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필요한 것만큼만 주는 것도 대단한 사랑이다. 그러나 저 사람에게 얼마만큼이 필요할까? 하고 계산하고 딱 그만큼만 주는 것은 인색함이다. 넉넉하게 감사함으로 주는 것이 사랑이다.
셋째는 너를 나의 세계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너는 너, 나는 나’인 상태에서 내가 너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하는 것이다. 나를 열어서 내 경계를 허물어서 너를 받아들여 우리가 될 때, 사도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막힌 담을 헐고(엡2:12-13절) 내 안에 받아들여진 사람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도덕적인 사람도 칭송을 받겠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길을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도덕을 뛰어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 영생을 얻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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