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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기사승인 2018.06.14  11: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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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천 목사(감신대), 이찬석 교수(협성대), 조은하 교수(목원대) 공동집필

전도, 봉사, 선교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동참하는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이며 ‘성도로 부름 받은 공동체’이며, ‘성도로 세움 받은 공동체’이며, 마지막으로 ‘성도로 보냄 받은 공동체’이다.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으며 세상 속에서 ‘전도’ ‘봉사’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해야 한다. 이제 ‘우리 신학 한마당’의 연재는 셋째 마당: 구원의 사역에서 ‘성도로 보냄 받은 공동체’라는 주제로 전도, 봉사, 선교를 생각하여 보려고 한다. 전도, 봉사, 선교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고 지향하고 있는 지향점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세 가지를 독립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인 이해로 전락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로 보냄을 받은 공동체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심도 있게 참여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분리하여 생각하면서 각각의 독특성들을 돋아나게 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전도, 봉사, 선교라는 세 가지 개념들 중에서 이 시대에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하는 단어는 ‘전도’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개념은 ‘선교’로 생각된다. 전도는 문자 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봉사는 남이나 다른 공동체를 돌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봉사는 교회만 하고 있는 일은 아니며 많은 사회단체들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일들이지만, 전도와 선교는 교회만이 수행하고 있는 과제라 할 수 있다.

전도와 선교
<감리회 신앙고백> 6조는 ‘교회’에 대하여 고백하면서 교회의 본질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백하고, 교회의 기능을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로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서 전도와 선교를 구분하고 있는 점에 밑줄을 그어 보아야 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교리와 장정>은 감리교 신앙의 강조점으로서 ‘선교와 봉사’를 제시하면서 ‘전도’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있다.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구원은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를 성화시키는 데까지 개인적 경건은 사회적인 봉사와 참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동참의 행위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그의 은혜에 의존한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성령의 역사와 능력에 의해 세상을 향한 선교와 봉사를 위해 힘쓴다. 우리는 그 역사에 동참하는 책임을 가진다. 우리는 사랑과 자비의 섬김을 통해 이 세상에서 평화와 정의,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해야 한다.
 
감리교가 추구하고 있는 구원은 개인적 경건을 넘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웨슬리 신학적 용어로 말한다면, 개인적 성화를 넘어서 사회적 성화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 성화를 담아내고 있는 개념이 ‘선교’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교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와 생명과 평화를 심어서 이 세상 안에 평화와 정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는 것이다.

일방적인 전도
전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도록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거대담론이 해체되고 보편성이 고개를 숙이고 지역성과 특수성이 존중을 받고 있는 탈현대의 시대에서 전도는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특별히 공공의 장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선사하면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전도는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옥’ ‘뜨거운 불’ ‘영원한 형벌’ 등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는 일방적 전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선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더 압도적이다.

내 삶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전도
존 웨슬리는 인생의 후반기에 쓴 설교, “복음의 보편적 전파”(The General Spread of the Gospel)에서 입으로 하는 전도보다는 삶으로 이루어지는 복음 전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커다란 장애물이 순조롭게 제거되고 나면 회교도들은 그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감리교도들이 삶에서 장애물을 제거하면 회교도들이 감리교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장애물이 제거된 삶은 어떤 삶일까? 초대교회와 동일한 모습이다.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면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이는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 그 돈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으로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타자의 삶에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이전에 나의 삶에 복음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것을 우선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나의 삶에서 장애물이 제거되었을 때 복음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나의 복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들려주는 복음의 이야기에 타자가 귀를 기울이도록 나의 삶을 복음으로 다듬은 다음에 복음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웨슬리는 말하고 있다. 결국, 웨슬리가 제시하고 있는 전도는 ‘입’으로 하는 전도라기보다는 ‘삶’으로 하는 전도를 말하고 있다.

공포보다는 기쁨을!
나의 삶을 복음으로 다듬어서 장애물을 제거한 다음에 타자에게 들려줄 복음의 이야기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전도의 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들려주어야 한다. 존 웨슬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세우기를 열망하는 종교이니, 곧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종교요, 마음속 깊은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열매들로 자신을 늘 나타내며, 끊임없이 모든 무구함 속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자선 속에서 솟아나며, 그 주위에 덕과 행복을 퍼뜨리는 종교이다.” 여기에 근거한다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기쁨의 종교, 평화의 종교이며, 주위 사람들에게 덕과 행복을 퍼뜨리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전도에 있어서 타자에게 들려주어야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들에게 덕과 행복을 전달해야 한다. 전도의 내용은 뜨거운 지옥이나 영원한 형벌과 같은 공포의 이야기에서 사랑, 기쁨, 평화의 이야기로 변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롬14:17) 전도는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일이고,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노른자위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면, 전도는 의와 평화와 기쁨의 삶을 증거 하는 일을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전도자는 자신의 삶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을 먼저 경험해야 하고, 그 삶을 말로가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러므로 전도는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타자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전도의 일차적인 단계는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기 보다는 감동을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의롭고 평화롭고 기쁜 삶에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복음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듣고 싶어질 것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은 피켓이나 목소리가 아니라 삶 안에 담아내어야 한다.

카라조바 _ ‘의심하는 도마’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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