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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

기사승인 2018.06.08  10: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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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천 목사(감신대), 이찬석 교수(협성대), 조은하 교수(목원대) 공동집필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화될 수 있음을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자연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성도로 세움을 받은 공동체인 교회가 구원의 사역을 펼쳐 나가기 위하여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 대한 올바른 방향/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남들을 흉내 내거나 뒤쫓아 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펼쳐나가는 교회가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

조토 디 본도네의 ‘성령강림절’

천대받는 신학

교회와 신학은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함께 걸어가야 하는데 현실은 서로가 등을 돌리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목회자들은 신학이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신학보다는 목회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 평신도들은 신학이 신학생들이나 신학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신학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성경공부에만 열중한다. 목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현대신학이나 탈현대신학이라기 보다는 교회 성장에 관한 담론들이다.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관심이기 때문에 교회성장에 관한 세미나가 주목을 받게 되고 신학은 천대를 받고 있다. 평신도들은 신학이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고 신학이 없는 성경공부를 주문하고 있다. 교회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신학이 교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신학대학의 강의실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반복하고 있다.

 

신학자들만의 리그

필자가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여 신학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지 2-3학기가 지난 후에 무겁게 내려오는 음성을 들었다. “너의 강의를 듣는 신학생들의 99%는 신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고 목회자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너는 저 학생들이 신학자가 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강의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음성은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 비록 이론과목인 조직신학이지만 학생들에게 학문적인 생각과 글들만을 요구하지 않고 강의시간을 통하여 익힌 개념들로 설교문을 작성하고 목회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제도 병행하기 시작하였다. 신학의 중요한 과제가 무엇일까? 복음을 시대에 적합하게 해석하여 교회에 봉사하는 일이다. 이것이 신학의 본질이요 과제이다. 그러나 신학이 목회현장을 집요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상아탑 안에 갇혀서 학문적 씨름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신학자들이 씨름하는 주제가 세계 신학적/ 인문학적 주제들을 흡수해야 하지만 그것에 갇히지 않고 이 시대 한국교회가 돌파해야 하는 과제들에 대한 대안/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신학은 인문학이 아니고, 우리가 씨름하는 교회 현장은 한국교회이기 때문이다.

 

금단의 열매

신학생들이 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겪게 되는 최초의 아픔은 신앙과 신학의 갈등이다. 신학공부를 하면 자신들의 신앙이 더 굳건하여지고 얽혔던 신앙적 문제들이 매끄럽게 정리될 줄 기대하였는데, 신학적 지식을 하나 둘 접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이 정리되기 보다는 더 복잡하여져서 신앙적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이 혼란은 사춘기에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 할 수 있고,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한 산모의 진통이라 할 수 있는 신학적 진통이다.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믿고 살아왔던 신학생들이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신학적 지식은 창조 순서는 2가지이고, 창세기를 J, E, D, P 자료로 분류하면서 성경 안에 흐르고 있는 인간들의 신앙과 신학을 규명하여 준다. 복음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대로 기록된 말씀이라 믿고 있었는데, 4문서설을 근거로 하여 복음서 저자들의 상황, 의도 등 복음서를 분석하고 분해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신학생들은 신앙적 혼란을 겪게 되지만, 정작 자신들이 봉사하고 있는 교회에 가서 이러한 신학적 지식들을 말하지 못하고 그러한 신학적 지식에 근거하여 설교문을 작성하지 못한다.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적 지식은 교회 현장에서 활용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열매’가 되어 버렸다.

금단의 열매 삼키기

성경을 읽어 가다보면 여기에서의 말씀과 저기에서의 말씀이 서로 충돌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5:17) 믿음이 가장 중요하게 읽혀진다. 그러나 야고보서에 따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믿음이면 충분한가? 아니면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하는가? 삼겹살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음의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돼지는 굽은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당신들에게 부정한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고, 그것들의 주검도 만져서는 안 됩니다.”(신14:8) 이러한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신학에 있다. ‘금단의 열매’를 먹어야한다. ‘금단의 열매’로 생각되고 있는 신학이 있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궁금증과 어려움은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성령은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시는가? 라는 물음에 쉽고 명료하게 답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알기 때문에 이것도 말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금단의 열매인 신학을 먹으면 이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다. 신학 교육은 신학생들에게만 필요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신학교육은 신학생과 목회자에게만이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 ‘성서비판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성경적 지식으로 이 시대의 성도로 세움 받는 공동체가 되기에는 신앙적 근육이 너무 여리다. 계몽주의 이전의 이성으로 이 시대 속에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펼쳐 나가기에는 연약하기만 하다.

 

신학적 4중주에서 5중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바르고 정확하게 펼쳐가기 위한 신학을 위하여 필요한 지침들이 있을까? 웨슬리 학자들은 웨슬리 신학의 4대 원칙을 제시한다. 성경, 전통, 이성, 경험이다. 그러나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 4가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토착문화’다. 그러므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신학은 성경, 전통, 체험, 이성, 토착문화라는 5가지 지침을 근거로 전개되어야 한다. <교리와 장정>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신학을 위한 지침을 근거로 신학적 5중주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성경 : 존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이었노라고 고백한다. 한국 감리교인들은 성경이 기독교 교리를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이요, 표준임을 믿는다. 구약성서 39권과 신약성서 27권으로 되어있는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원천이요, 믿음과 실행의 참된 법도와 안내이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모든 믿음에 대한 해석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그러므로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성경은 최우선적이다. 성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전통, 체험, 이성, 토착문화는 필수적이며, 여러 유익한 방법들을 수용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신학의 과제는 성경본문의 축자적 반복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말씀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데 있다.

2) 전통 : 웨슬리는 성경연구와 깊이 있는 신앙을 위하여 기독교의 전통, 특히 교부들의 신학 책들과 초교파적 신조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교훈과 웨슬리 시대의 영성에 관한 문서들을 참고하였다. 전통은 낡은 것이라기보다는 기독교 신앙공동체들의 모범적 유산이다. 그 안에 간직된 복음의 진리는 모든 기독교인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새로운 도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새로운 도전이 전통이 되는 길은 그것의 참됨과 정당함을 성서와 우리 교회의 교리적 입장에 비추어 분별하고 신앙공동체의 합의를 얻음으로 가능하다.

3) 체험 : 전통이 교회와 연관된다면, 체험은 개인과 연관된다. 성경에 계시되고 전통에 의해 조명된 복음의 진리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짐으로 살아 움직이게 된다.

4) 이성 : 성서의 메시지를 드넓은 지식의 세계와 연관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신학은 이성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와 이성을 넘어서지만, 우리의 신학적 작업은 이성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성경, 전통, 체험으로부터 발전된 기독교 교리는 비판적 이성에 의하여 그것의 일관성과 명료성을 획득해야 한다.

5) 토착문화 : 1930년 기독교조선감리회가 출범하는 자리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성격을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진정한 한국교회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서 한국적 교회가 되게 하자는 것은 한국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내버린다는 협소한 말이 아니라 고금을 통해 전래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서 예배에나 행정에나 규칙에 잘 이용하되 한국문화와 풍속과 습관에 조화되게 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감리교회가 진정한 한국 교회가 되도록 하는 데 있어서 성경, 전통, 체험, 이성과 더불어 한국의 문화를 중시하는 신학의 수립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식별과 적용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미래사회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 접속되는 복잡한 사회이다. 융/복합이 화두로 회자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학도 융/복합의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신학이외의 다른 학문과도 융/복합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신학 안에서의 융/복합이 요구된다. 신학은 현재 조직신학, 기독교교육, 구약학, 신약학, 교회사 등 다양한 전공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전공들 사이의 융/복합적 소통과 연구는 희소하기만 하다. 현재 신학의 전공분류는 실제적으로 낡은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했고, 교회현장이 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의 전공분류는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시대는 교회개척의 시대가 아니라 사역개척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조직신학에 근거한 조직신학적 목회나 구약학에 근거한 구약학적 목회가 아니라 문화 사역에 중심을 두는 문화목회, 환경문제에 집중하는 생명목회, 농촌의 문제에 집중하는 농촌목회 등 목회현장은 다양한 사역과 신학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의 전공분류도 목회현장에 어울리게 변화되어야 한다. 즉, 현재 신학의 전공분류는 해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질 때 신학과 교회의 거리는 좁혀질 수 있고, 교회 안에서 신학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교회 안에서 신학교육을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신학의 자기변화로 읽혀진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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