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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언어로 기록된 예수님의 죄패

기사승인 2018.06.08  10: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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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강신 목사. 대광교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죄패를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각 나라 말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때는 유월절로서 세계 각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이 예루살렘에 모인 때였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본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이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의 구주가 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구주이심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구주이십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라틴어)는 고대세계의 3대 언어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인류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던 방식으론 인류가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헬라(그리스) 사람들은 철학과 예술,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고대 철학자들이 다 헬라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다 헬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위대한 철학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철학을 가지고는 인류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결코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 가지고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만든 예술로도, 문화로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술이나 문화가 인간의 삶을 보다 아름답고 풍성하게 해 주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인간이 구원 받지는 못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힘과 법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 힘으로 서방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힘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그들은 법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로마법은 고대 로마인이 후세에 남긴 최대 유산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정치제도, 신분제도, 경제제도, 세금제도 등 각종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로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종교와 율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유일신을 믿는 단일종교 국가로서 철저히 율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종교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종교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롬 3:20) 만일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오실 필요가 없었고 더구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갈 5:4)

 

구원은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주이십니다.(행 4:12) 예수님 외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요 14:6)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 즉 그리스도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나 이념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떤 힘이나 제도나 법, 심지어는 종교로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는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굳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이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어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찬송가에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한 것처럼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히 9:12)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예수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 받은 다음에 예수님 방식으로 사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많은 목사와 교인들이 예수님 방식으로 살지 아니하고 여전히 세상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헬라식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지성적이고 고상하게 하는 것 같지만 철학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를 사상과 이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유럽처럼 기독교적 문화를 가지고 있어도 그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고 성령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식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개인과 집단의 힘을 키워서 그 힘으로 지배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힘이 지배하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규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법 만능의 종교가 아닙니다. 법은 공공의 질서와 다수의 행복, 교회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로 끝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제도로 다스리려고 해도 안 됩니다. 제도는 필요하지만 모든 것이 제도화되면 성령의 신비한 생명과 능력의 역사가 약화 되거나 사라집니다. 4세기 이후 제도화한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식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신앙생활인데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유대교인들처럼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잘 지키고 십일조 생활만 잘 하면 되는 줄 오해했던 유대인들처럼 신앙생활을 합니다.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특별히 마태복음 5장에서 강조하신 부문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주님이 산상수훈에서 강조하신 것은 이방인들처럼 악은 더 큰 악으로, 선도 악으로 갚는 무법자로 살아서는 안 되고, 율법주의자들처럼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상대방이 내게 행한 대로 갚아주는 율법적 삶을 살아서도 안 되고, 오른 편 뺨을 치면 왼 편도 돌려대는(마 5:39) 악을 선으로, 악을 사랑으로 대하는 천국시민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방식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롬 12:2)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눅 9:23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신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자기 욕망성취를 위해 신을 도구화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부정, 곧 자아죽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이제는 내 속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갈 2:20) 이것은 곧 성령으로 사는 삶입니다.(갈 5:25) 내 지식과 감정과 의지와 노력만으로 예수님처럼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엡 5:18)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역사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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