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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속도, 은혜의 속도

기사승인 2018.05.24  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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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식목사, 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몸을 단련(鍛鍊)하면서 마음도 수련(修鍊)한다는 이른바 내가권(內家拳) 계통의 중국 무술에서는 단연 태극권이 으뜸이라고 본다. 그중에 진씨(陳氏) 태극권 즉 진가권(陳家拳)은 실전 무술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양식(楊式) 태극권, 양가권(楊家拳)은 ‘움직이는 명상’이라 불릴 정도로 내적인 수련을 강조한다. 송(松,鬆)·온(穩)·만(慢)·균(均)은 양가권 요결 중 하나이다. 송은 힘을 빼서 이완하는 것이고, 온은 침착함으로 평온과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며, 만은 움직임을 완만하게 하는 것이며, 균은 움직임에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균일하게 하는 것이다.
대개의 격투기는 순간적으로 빠르고 강한 힘으로 파괴력을 높여 상대를 무너뜨리는데 강점을 두고 있지만, 태극권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강점을 둔다. 때로는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장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꼭 상대를 쓰러뜨려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때로는 서로의 힘을 대어보다가 싸우지 않고 물러나서, 승부를 결정짓지 않고 서로의 힘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겨루기가 끝나기도 한다.
판문점 정상 회담 이후, 남과 북의 문제를 풀어 가는 데 있어 두 가지 태도를 보게 된다. 단숨에 담판을 짓고 일종의 승부를 보자는 측과, 천천히 상황을 보아가며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측이 있어 보인다. 물론 무엇인가 빨리 해결되고 남북의 교류도 활발해지고 그러다가 얼른 통일이 되면 가장 바람직한 승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갈라져 산지 70년이 넘은 부부가 합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더구나 집안 전체를 피로 적신 큰 싸움을 치르고, 그후로도 심심찮게 공방을 벌여온 사이가 말이다. 빠르게 하다간 자칫 ‘격투기와 같은 양상이 벌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좀 느리더라도 일정한 속도로 서로의 힘을 인정해주면서 침착하고 평온하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이랬다저랬다 하거나 느렸다빨랐다 하지 말고 일정한 속도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공연히 무게를 잡아가며 뻣뻣하게 굴 일도 아니다. 부부가 화해하자는데 자존심보다는 가족의 생활 현실을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앨런 패들링은 ‘느긋한 제자’(최요한 옮김,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자신을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속도 중독자”라고 고백한다. ‘스피드’라는 이름의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물리적인 속도뿐만 아니라 내면의 속도를 빨리하고자 하는 ‘조급증’이 교회 안에도 퍼져있는 것이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게다가 교회의 속도가 세상의 속도 못지않게 빠르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말한다. 교회가 세상의 현실과 동떨어져서 전통을 고집하거나, 천천히 한다고 하면서 게으름으로 열심과 열정을 놓치라는 말이 아니라, 서두르다가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찾아오심을 놓쳐버리고 마는 우리 시대의 ‘습관화되고’ 심지어 ‘우상화된’ 21세기의 빠름에 대한 보챔을 놓아 버리라는 것이다.
‘서두르는 버릇’이 숫자와 크기의 우상과 만나서 한국교회 교회성장론에 영향을 미쳤다. 크거나 늘어나거나 빨리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고 한다면 과연 저리 서두를까 의심이 든다. 교회의 성장도 평온과 균일함 속에서 든든하고 탄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앨런 패들링은 로널드 보이드맥밀란의 ‘불굴의 믿음’(Faith That Endure)에서의 대화를 인용한다. “하나님을 따르려면 반드시 걷는 속도로 가야 하네.” “교회가 믿음을 지키는 열쇠는, 하나님은 서두르는 법이 없으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분은 마음과 더불어 일하신다… 우리는 하는 일이 몹시 많아서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최요섭 목사의 ‘설교와 수상전집’ 제4권 제목은 ‘시속 3마일의 하나님’이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빵’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은 40년을 계획하시고, 40년 동안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나님도 시속 3마일(4.8킬로미터)로 천천히 동행하셨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 교훈을 공부시키는데 40년이 걸렸고, 그 커리큘럼은 ‘걷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단 하나의 공부로 이스라엘은 ‘말씀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가 남과 북의 만남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가는 소망을 가능한 현실로 만들고 싶다면, 세상 정치의 속도를 평화의 속도로 바꿀 수 있는 은혜의 속도에 우리가 먼저 익숙해지도록, ‘걸으며’ 기도하고 ‘걸으며’ 사랑하고 ‘걸으며’ 전파하는 ‘광야 학교 커리큘럼’에 등록부터 해야 하리라.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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