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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30년 중 가장 보람 있던 ‘난민 사역’

기사승인 2018.05.24  13: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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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족 난민사역 현장, 학교와 센터 교회를 방문하고

라마단이 시작되는 첫째 날, 따가운 열대 태양이 작열하기 시작하는 오전 10시 30분 쿠알라룸푸르 도심 뒷동네 임비로(Jalan Imbi)의 난민 사역처를 찾았다.
먼저 난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식당을 찾아갔고, 뜻밖에 ‘난민교회’(CCF) 임원인 ‘띤헤련’(Tin Hre Lian)을 만나 교회와 학교, 난민센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어 난민교회 본부로 향했고, 여기서 2000년부터 선교를 협력했던 지미 목사(Rev Hram Chung Hnin)를 반갑게 만났다. 마침 그가 회의 중이어서 우선 CCF 임원과 함께 학교와 난민센터를 둘러보기로 했다.

난민학교 임비교(Imbi Camp)
난민학교연합(CSO) 중 임비교(Imbi)를 찾았다. 본래 있었던 자리에서 옆 서민 아파트 4층 유아반 교실로 옮겨져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 철문을 열고 난민학교 교실로 들어섰다. 어린 학생들 15명이 수업 중이었다. 어린이들과 함께 앉아 학습얘기를 들어 보았다.
교실 옆문을 열고 교무실로 안내되었고, 임비교 책임교사 ‘다이아나’(Tha Khun) 선생을 만났다. 작은 키였지만 총명한 여선생이었고 대화하는 중 릴리안 선생(선교사)도 알고 있어 맘이 편하고 기뻤다. 다이아나 선생을 통해 현재 난민학교에 대한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
난민학교연합(CSO)은 6개교에서 4개교, 학생은 12명으로 줄어들었고, 본부 격인 ‘임비교’(Imbi Camp)는 학생수가 30명 이었다. 좀 더 세밀한 통계로는 4-6세(15명), 6-7세(5명), 10-12세(5명), 13-16세(5명)반으로 총 30명이라 했다. 난민학교연합(CSO) 4개교는 Imbi, Cheras, Loke Yeow, Puchong교라 했다.
임비교 학생들은 열대 열기 속에서도 교복을 입고, 땀 흘려 가며 공부하고 있었으며, 학습 시간표에 따라 주 5일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다이아나 선생이 CSO교사 회의가 매월 모이고 있다고 하기에, 6월 회의 모일 때 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하였다. 교무실을 나서며, 크리스티나 선생님(Ni Len Par)과 어린이들이 반겼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친 난민 센터(Chin Refugee Centre, CRC)
친족 난민센터는 2000년부터 드나들며 협력하던 곳으로 낯익은 곳이다. 좁고 어두운 4층 계단을 숨차게 오르니 보안이 철저한 듯 굳게 닫힌 철문이 가로막았다. 전화로 방문계획을 알렸기 때문에 직원이 곧 나와 철문을 열어주었다.
난민센터 안에는 10여 명의 난민가족들이 앉아 있었고,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일터를 찾아 나가기도 하고, 일터를 찾는 동안 대기하는 곳이기도 했다. 곧 옆문을 열고, 난민센터 사무실로 안내 받았다.
‘친 난민공동체’(Chin Refugee Committee) 망던(Mang Dun) 회장을 만났고, 난민센터, CRC와 함께 협력사역을 했던 일을 회고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 반가운 마음이 통하였고, 난민상황을 듣게 되었다.
‘KL 유엔난민기구’(UNHCR, KL)로 부터 난민카드를 접수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제3국으로 이주했으나 아직도 말레이시아는 100만 명의 난민이 있다고 들었다.
그 중 친(Chin)족 난민은 3만 명이나 된다. 이들은 대부분 열약한 노동환경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으며, 난민으로 접수받아 제3국으로 이주하길 소망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도움과 참여를 의논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발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나오니 20여 명의 난민들이 대기하며 서성였고, 난민센터 임원들과 다함께 사진을 찍었다. “안녕히 가세요. 또 만나요!” 인사를 나누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해 주었다. 할렐루야! 아멘.

난민교회-Chin Christian Fellowship(CCF) 본부
난민 친족(Chin) 사역은 2000년 개척시작 때부터 협력선교로 전개한 일이다. 당시는 행정수도 뿌뜨라자야(Putrajaya) 공사가 한창이었을 때였고 친족 난민들은 정글 속에 비닐천막 막사에서 기거하며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당시 정글교회 ‘벧엘채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던 일도 기억난다. 보안경찰의 감시를 피해 그곳을 방문해 예배 인도하고 성찬식도 거행하며, 성경 공부하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때 함께 수고했던 친족목사 지미가 마중 나와서 참 반가웠다.
친족교회연합(CCF)은 임비에서 개척 시작하였고, 현재 6개 지역 교회로 성장해 자립운영되고 있다. CCF 6개 교회는 Imbi, Cheras, Damai, Puchong, Kajang, Seremban 교회이며, CCF 목사 3명과 신도회장, 임원들이 주일마다 순회하며 예배인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고 있다. 
이들에게 찬송가가 필요한 것을 알고 ‘친족어 찬송가’를 7회에 걸쳐 1만 4000권 출판 보급해 주었으며 이 찬송가는 난민들이 제3국으로 이주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선교’에도 공헌했다는 것이 이들의 평이요, 감사한 일이었다. 이들은 ‘한국인 노종해 선교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도 반갑게 환영해 주고 있다.
난민 친교회(CCF) 담임목사와 협력목회자들, 신도 회장과 함께 본부 사무실공간에서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다. 친교회는 현재 임비에서 난민지역인 ‘뿌두’(Pudu)로 이전하여 12시에 주일예배를 드린다고 하였다. 난민 친족교회(CCF) 교인 수는 3000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들은 십일조를 헌금하고 월정헌금 등을 통해 재정 면에서 자립할 뿐 아니라, 고향 교회를 돕고, 세계선교에도 참여하고 있다.
신도회장과 담임목사는 다른 일이 있어 헤어졌고 지미목사와 친 음식으로 점심을 나누었다.
난민사역은 선교사 30년 중 가장 보람찬 일이며, 감사와 기쁨으로 넘치는 사역현장이었다. “주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할렐루야!”하고 찬송하며 감격하였다. 마침 천둥치며 쏟아지는 소낙비는 마음까지 시원케 하였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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