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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과 전도

기사승인 2018.04.10  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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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은 17세기 영국의 존 번연이 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팔렸다는 베스트셀러다. 예전에 이를 토대로 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함께 만든 작품이었다. 준비도 잘 했고,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보는 동안 내 머리는 내용분석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직업병이 무섭다. 그렇게 분석하는 도중 딴지가 생겼다. 천로역정은 한 인간이 멸망과 불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듣고 두려움으로 시작된 순례를 다루는 내용인데 이 점이 영 마음에 걸렸다.

기독교세계관 안에 있던 당시 영국사회는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타락상을 보였고 여기에 대해 저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의 메시지를 던짐으로 회개를 촉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종교문화속에 있는 지금 우리 시대에 과연 저런 식의 메시지가 통할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요즘도 천로역정식의 논리로 비신자들에게 전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는 수요일마다 예수 천당, 불신지옥 피켓들고 하루종일 메가폰 잡고 “하나님의 불심판과 지옥”을 운운하며 전도하는 모습의 사람을 볼 수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도 그 얘기를 경청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공해처럼 여긴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심판’이란 주제를 던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를 던지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은혜의 나라요, 자유와 해방이 있는 회복의 나라다.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사랑과 평화로 다가가셨다. 소망을 주셨다. 그렇다고 해서 심판과 지옥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구원과 심판, 양쪽을 다 가르치셨지만 구원의 주제로 다가가셨다. 

천로역정은 심판의 주제로 먼저 접근한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비신자보다 못한 삶을 살아갈 때 맞아 떨어진 접근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오늘 기독교 역사 이래 최고의 성장을 보였다고 자랑하며, 권력까지 탐하는 한국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에게 던져져야 될 메시지다.

그러나 비신자들에게는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받게 될 지옥형벌보다는 받아들이는 자들이 얻게 될 구원의 소망을 던져야하지 않을까?

단체는 분명 문화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공연을 올렸을거다. 그러나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메시지가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다종교문화상황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어필이 되었을까 싶다. 물론 그 공연관람은 대부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었으니 다들 은혜를 받았겠지만, 비신자를 목적으로 한다면 복음서의 예수님에게서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 중에는 예수님에게서 지혜를 얻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어떤 죄를 지었든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다. 심판과 형벌을 운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경험하고 받고 있는 그 사랑을 온몸으로 나누어주면서 감동을 주려고 한다. 굳은 마음은 그 사랑과 따뜻한 감동에 의해 녹는다. 그리고 복음이 들어간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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